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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총(天馬塚)은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대릉원에 있는 6세기 초 신라의 돌무지덧널무덤으로, 1973년 발굴 때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말다래에 하늘을 나는 말을 그린 천마도가 나와 이 이름이 붙었다.

천마총에서 나온 금제 관모와 새 날개 모양 금제 관식

원래 이름은 황남동 155호분이다. 1973년에 발굴되었다. 지름 47m, 높이 12.7m에 이르는 큰 무덤으로 왕릉으로 본다.[1] 땅 위에 나무 덧널을 짜고 그 안에 나무 널과 껴묻거리 상자를 넣은 뒤, 냇돌을 쌓아 덮고 다시 흙으로 둥글게 덮었다. 이런 돌무지덧널무덤은 도굴이 어려워 껴묻거리가 고스란히 남았다. 장신구·무기·마구·그릇 등 1만 1,526점이 나왔다.[2]

  • 천마도 장니 - 장니(말다래)는 말 탄 사람의 옷에 흙이 튀지 않게 안장 양쪽에 늘어뜨린 마구이다.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장니에 하늘을 나는 말을 그렸다. 고분 벽화가 드문 신라의 귀한 회화 자료이며, 그림의 말이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의 말과 닮아 고구려 벽화의 영향을 보여 준다. 그림 속 동물이 말이 아니라 기린이라는 주장도 있다. 국보이다.
  • 금관 - 出(출) 자 모양 세움 장식 3개와 사슴뿔 모양 세움 장식 2개를 단 금관으로, 국보이다(→ 신라 금관).
  • 금제 관모·금제 관식 - 고깔 모양의 금제 관모와 함께, 금판을 새가 날개를 활짝 편 모양으로 오려 만든 금제 관식(관 꾸미개)이 나왔다. 관식은 관모 앞에 꽂던 장식으로, 높이 약 45cm이고 테두리에 동그란 금 달개를 촘촘히 달았다. 나비 모양의 관식도 함께 나왔다. 금제 관모는 국보, 금제 관식은 보물이다.[3][4]
  • 금제 허리띠 - 국보이다.

돌무지덧널무덤은 지증왕 때까지 경주 시내 평지에 만들어졌고, 법흥왕 때부터 왕릉은 서악동 무열왕릉 뒤쪽 산기슭으로 옮겨 갔다. 천마총은 대릉원의 무덤 가운데 늦은 6세기 초에 만든 것으로 보여 소지 마립간이나 지증왕의 무덤으로 추정하며, 지증왕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1]

다른 나라의 유물과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유물 나라·시대
천마도 장니, 새 날개 모양 금제 관식 신라 (천마총)
용이 받치고 봉황이 올라앉은 금동 향로 백제 (→ 백제 금동 대향로)
몸체 양쪽에 가지가 셋씩 뻗은 쇠칼, 왜왕에게 보냄 백제 (→ 칠지도)
따비로 밭을 가는 사람과 새를 새긴 청동기 초기 철기 시대 (→ 농경문 청동기)
광배 뒤에 '연가 7년'이 새겨진 금동 불상 고구려 (→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
불꽃 무늬로 오린 금제 관식 백제 (→ 무령왕릉)
  1. ↑ 1.0 1.1 천마총, 교과서 용어 해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2026-10-19 확인.
  2. ↑ 천마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3. ↑ 천마총 금제 관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4. ↑ 천마총 금제 관식,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