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평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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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평 운동(衡平運動)은 1923년 경상남도 진주에서 조선 형평사를 만들면서 시작된, 백정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없애고 평등한 대우를 받으려 한 신분 해방 운동이다.
- 조선 형평사 창립 - 1923년 4월 진주에서 백정 출신 자산가 이학찬과 장지필, 양반 출신 강상호·신현수 등이 중심이 되어 형평사를 세우고 취지서를 발표했다. 자녀 교육 차별에 대한 분노가 직접적인 계기였다.
- 확산 - 1년 만에 전국에 지사·분사가 생겼다. 『조선일보』 등 언론과 여러 사회단체가 지지했다.
- 반형평 운동 - 일반 농민 등이 쇠고기 불매 동맹을 맺거나 형평사 분사를 습격하는 등 반발도 거셌다(1925년 예천 사건).
- 분열과 통일 - 1924년 본사를 어디에 둘지를 두고 진주 중심의 온건파와 장지필 등 혁신파가 갈렸다가, 다시 합쳐 본부를 서울에 두었다.
- 사회 운동과의 연대 - 조선 노농 총동맹·조선 청년 총동맹 등과 손잡고 파업·소작 쟁의에도 참여했다.
- 변질 - 1930년대 일제의 탄압과 내부 대립 속에 1935년 이름을 대동사로 바꾸고 이익 단체로 성격이 바뀌었다.
| 사실 | 운동 |
|---|---|
| 백정에 대한 사회적 차별 철폐를 목적으로 함 | 형평 운동(조선 형평사) |
| 자작회·토산 애용 부인회 참여 | 물산 장려 운동 |
| 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 모금 | 민립 대학 설립 운동 |
| 대한매일신보의 지원을 받아 확산 | 국채 보상 운동(1907) |
| 근우회 조직, 여성 차별 철폐 | 여성 운동(신간회의 자매 단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