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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기군(別技軍, 1881~1882)은 1881년 조선 정부가 5군영에서 뽑은 80여 명으로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군대로, 일본인 교관에게 훈련받아 왜별기라고도 불렸다. 정식 이름은 교련병대이다.

개항 뒤 조선 정부는 통리기무아문을 두고 수신사·영선사를 보내는 등 개화 정책을 폈다. 1881년 4월 일본 공사 하나부사가 육군 소위 호리모토 레이조를 교관으로 추천하자, 고종은 이를 받아들이고 신식 군대를 만들게 했다. 별선군관 윤웅렬이 중심이 되어 5군영에서 몸이 튼튼한 지원자 80여 명을 뽑아 무위영에 소속시켰다.[1] 당상은 민영익, 정령관은 한성근이 맡았고 윤웅렬·김노완·우범선 등이 지휘관이었으나 실제로는 윤웅렬이 이끌었다. 처음에는 청에서 교관을 데려오려 했으나 시일이 걸려 일본 공사관의 호리모토를 초빙했다.[2]

  • 훈련 - 1881년 5월 9일부터 서대문 밖 모화관에서 훈련을 시작했고, 뒤에 하도감으로 옮겼다. 같은 해 8월 고종이 창덕궁 춘당대에서 훈련을 사열했다.
  • 장비 - 신식 소총을 들고 초록색 신식 군복을 입었다.
  • 대우 - 급료와 옷 등 모든 대우가 구식 군대보다 훨씬 좋아 구식 군인들의 시기를 샀다.[1]

같은 해 5군영이 무위영·장어영의 2영으로 줄면서 일자리를 잃거나 차별받은 구식 군인의 불만이 쌓였다. 1882년 6월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구식 군인들이 하도감의 교련장을 습격해 호리모토 등 일본인을 죽였고, 다시 집권한 흥선 대원군이 별기군을 없앴다.[2] 1년 남짓 존속했지만 이후 신식 군대를 만드는 바탕이 되었다.

근대 군사 기구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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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구 때 특징
5군영 조선 후기~1881년 훈련도감 등 다섯 군영, 1881년 2영으로 축소
별기군 1881~1882년 일본인 교관, 최초의 신식 군대
원수부 1899~1904년 대한 제국 황제 직속 최고 군 통수 기관
  1. ↑ 1.0 1.1 별기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2.0 2.1 (4) 신식 육군(별기군)의 창설(1881), 『신편 한국사』 38,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