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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선사(領選使, 1881~1882)는 1881년 조선 정부가 신식 무기 제조법과 군사 기술을 배우게 하려고 김윤식의 인솔 아래 청 톈진에 보낸 유학생·기술자 사절단으로, 귀국 뒤 근대식 무기 공장인 기기창을 세우는 바탕이 되었다.

1879년 영중추부사 이유원이 청의 이홍장에게 신식 무기 학습 가능성을 타진했고, 1880년 변원규를 보내 정식으로 요청했다. 이홍장은 톈진 기기국에서 무기 제조법을 배우게 하는 장정을 마련했다. 유생들의 반대 상소가 있었으나 고종은 1881년 2월 통리기무아문에 준비를 명했고, 순천 부사 김윤식이 영선사로 임명되었다.[1]

  • 인원 - 유학생은 중인 이상의 학도 20명과 천인 신분의 공장 18명 등 38명이었고, 관원·통역·수행원을 합쳐 정식 인원은 69명이었다.
  • 일정 - 1881년 9월 26일 출발해 11월 톈진 기기국에 도착했고, 이듬해 1월부터 각 공장에 나뉘어 배웠다.
  • 학습 - 화약·탄약 제조법을 비롯해 전기·화학·제도·제련·기초 기계학과 외국어까지 배웠다.[2]

1882년 5월까지 유학생의 절반인 19명이 병이나 재주 부족 등으로 중도에 돌아왔고, 경비를 빌려 써야 할 만큼 재정이 어려웠다. 1882년 6월 임오군란 소식이 전해지자 학습이 중단되었고, 김윤식은 7월에 먼저 돌아왔으며 남은 유학생도 그해 11월 귀국했다. 목적을 충분히 이루지는 못했으나, 이들이 들여온 기술과 기계는 1883년 서울 삼청동에 근대식 무기 공장인 기기창을 세우는 바탕이 되었다.[1][2]

김윤식은 톈진에 머무는 동안 이홍장과 여러 차례 회담하며 미국과의 수교 문제를 협의했고, 이는 1882년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로 이어졌다.[1]

개항기 해외 사절단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사절단 때 간 곳 특징
수신사 1876·1880년 일본 김기수, 김홍집(『조선책략』 들여옴)
조사 시찰단 1881년 일본 박정양·어윤중 등, 정부 기관·산업 시설 시찰
영선사 1881년 청 김윤식, 톈진에서 무기 제조법 학습, 기기창
보빙사 1883년 미국 민영익·홍영식 등
  1. ↑ 1.0 1.1 1.2 영선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2.0 2.1 영선사 파견,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