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메뉴 여닫기
환경 설정 메뉴 여닫기
개인 메뉴 여닫기
로그인하지 않음
지금 편집한다면 당신의 IP 주소가 공개될 수 있습니다.

부여(夫餘)는 기원전 2세기 무렵부터 494년까지 만주 쑹화강 유역의 평야 지대에 있던 예맥족의 나라로, 왕 아래 여러 가(加)가 사출도를 나누어 다스린 연맹 왕국이다.

부여는 넓은 평야에서 농경과 목축을 함께 했고 말·주옥·모피가 유명했다. 1세기 초에 이미 왕호를 쓰고 중국과 외교 관계를 맺을 만큼 성장했으나, 선비족과 고구려 사이에 끼어 세력이 약해졌다. 3세기 말 선비족 모용씨의 침략으로 크게 타격을 입었고, 494년 고구려 문자명왕 때 왕실이 고구려에 항복해 병합되었다.[1]

고구려와 백제는 모두 부여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스스로 밝혔다. 백제 성왕이 사비로 도읍을 옮기고 나라 이름을 '남부여'로 바꾼 것도 이 계승 의식을 보여 준다.

왕 아래 마가·우가·저가·구가라는 가축 이름을 딴 대가들이 있었다. 이들은 각자 사출도라는 지역을 따로 다스렸고, 왕은 중앙만 직접 다스렸다. 왕권은 약해서 가뭄이나 홍수로 흉년이 들면 왕에게 책임을 물어 바꾸거나 죽이기도 했다.

  • 영고 - 12월에 지내는 제천 행사. 수렵 사회의 전통이 남은 것으로 본다.
  • 1책 12법 - 남의 물건을 훔치면 12배로 갚게 했다. 살인자는 사형에 처하고 가족을 노비로 삼았다.
  • 순장 - 왕이 죽으면 많은 사람을 함께 묻었다.
  • 형사취수제 -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았다. 고구려에도 있었다.
  • 우제점복 - 전쟁이 나면 소를 잡아 그 굽으로 길흉을 점쳤다.
  • 흰옷을 즐겨 입었다.
  1. ↑ 부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