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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는 1434년(세종 16) 세종의 명으로 우리나라와 중국의 충신·효자·열녀의 행실을 골라 그림과 글로 엮어 펴낸 윤리 교화서이다.

『삼강행실도』(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전시)

1428년(세종 10) 진주 사람 김화가 아버지를 죽인 사건이 알려지자 세종은 크게 놀라 자책하고, 신하들에게 효제를 두텁게 하고 풍속을 바로잡을 방책을 논의하게 했다. 변계량이 『효행록』 같은 책을 널리 펴자고 건의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집현전 직제학 설순 등이 편찬을 맡았다.[1] 1434년 4월 세종은 이 책을 인쇄해 서울과 지방에 나누어 주고, 학식 있는 사람을 골라 백성을 가르치게 했다.

  • 구성 - 효자도·충신도·열녀도의 세 부분으로 나뉜다. 효자 110명, 충신 112명, 열녀 94명가량을 실었고 그 가운데 우리나라 사람은 효자·충신·열녀 각 4~6명이다.
  • 그림 - 글을 모르는 사람도 알 수 있도록 이야기마다 그림을 붙였다. 한 화면에 아래에서 위로 1~3장면을 차례로 배치했으며, 안견 등 당대 화원이 밑그림에 참여한 것으로 본다. 조선 판화의 시초라는 의의가 있다.[2]
  • 글 - 행적을 한문으로 적고 끝에 시와 찬을 달았다.

1434년 반포 때 윤회가 지은 교서는, 신하·자식·아내가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일이 있어 유신에게 고금의 충신·효자·열녀를 뽑아 기록하게 했고, 어리석은 백성도 쉽게 깨닫도록 그림을 붙였다고 밝혔다. 또 백성이 글자를 몰라 책만 나누어 주어서는 뜻을 알 수 없으므로 서울의 한성부 5부와 지방의 감사·수령이 학식 있는 사람을 시켜 가르치게 하라고 명했다.[3] 이 고민은 뒤에 백성이 쉽게 익힐 글자인 훈민정음 창제와도 이어진다.

언해본과 후속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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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해본(1481, 성종 12) - 원간본에서 효자·충신·열녀 각 35명, 모두 105명을 추려 그림 위쪽에 한글 번역을 붙였다. 16세기 한글 연구의 자료가 된다.[4]
  • 이륜행실도(1518, 중종) - 삼강에 장유·붕우의 윤리를 더했다.
  • 동국신속삼강행실도(1617, 광해군) - 임진왜란 때의 충신·효자·열녀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사람만 실었다.
  • 오륜행실도(1797, 정조) -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를 합쳐 고쳐 펴냈다.

같은 시기 책들과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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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때 내용
삼강행실도 세종(1434) 충신·효자·열녀의 행실을 그림과 함께 엮음
농사직설 세종(1429) 우리 풍토에 맞는 농사법
악학궤범 성종(1493) 음악 이론·악기·의식 집대성
동의보감 광해군(1610) 허준이 전통 의학 정리
무예도보통지 정조(1790) 훈련 교범 (→ 정조 (조선))
만기요람 순조(1808) 군정과 재정의 내용 정리
  1. ↑ 『세종실록』 세종 10년 10월 3일, 효제를 돈독히 하고 풍속을 후하게 이끌도록 할 방책을 논의하게 하다, 조선왕조실록,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
  2. ↑ 삼강행실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3. ↑ 『세종실록』 세종 16년 4월 27일, 《삼강행실》을 인쇄하여 반포하고 가르치도록 하고 그에 대한 교서를 짓게 하다, 조선왕조실록,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
  4. ↑ 삼강행실도(언해),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