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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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희(孫秉熙, 1861~1922)는 동학의 3대 교주로 1905년 동학을 천도교로 고쳐 세우고, 1919년 민족 대표 33인의 대표로 3.1 운동을 이끈 종교 지도자이자 독립운동가이다.
- 일본 망명 - 1901년 일본으로 건너가 망명 중이던 개화파 인사들과 사귀고, 교도의 일본 유학을 주선했다.
- 진보회와 일진회 - 1904년 국내 교도에게 진보회를 만들게 했으나, 이용구가 이를 친일 단체 일진회와 합쳐 버렸다.
- 천도교 선포 - 1905년 12월 1일 동학을 천도교로 고쳐 부르고, 1906년 귀국해 천도교 대헌을 반포하고 서울에 중앙 총부를 두었다. 같은 해 9월 이용구 등 친일 세력 60여 명을 내쫓았고, 이들은 시천교를 세웠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을 교리의 중심에 두었다.
- 언론·교육 - 1906년 만세보 창간을 이끌었고, 보성 학교·동덕 여학교 등을 인수하거나 도와 운영했으며, 인쇄소 보성사를 두었다.
1919년 1월 무렵 천도교의 권동진·오세창·최린 등과 독립운동을 대중화·일원화·비폭력으로 펴기로 하고, 기독교·불교 대표와 손잡았다. 2월 27일 보성사에서 독립 선언서를 찍었고, 3월 1일 태화관에서 민족 대표들과 독립 선언식을 마친 뒤 스스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1] 1920년 징역 3년을 선고받아 서대문 형무소에 갇혔다가 병으로 풀려났으나 1922년 5월 19일 세상을 떠났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2] 복역 기간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1년 8개월 만에 병보석으로 나왔다고 하고, 공훈전자사료관은 2년간 복역한 뒤 뇌출혈로 가출옥했다고 적어 서로 다르다.
- ↑ 1.0 1.1 손병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 ↑ 이달의 독립운동가 손병희(2019년 3월), 공훈전자사료관, 국가보훈부,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