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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보(萬歲報, 1906~1907)는 1906년 천도교가 손병희의 발의로 창간한 일간 신문으로, 국한문 기사의 한자 옆에 한글 음을 달았고 이인직의 신소설 「혈의 누」를 처음 연재했다.

1906년 일본에서 돌아온 손병희는 교육과 계몽을 중시해 신문 창간을 이끌었고, 오세창이 사장을, 이인직이 주필을 맡았다. 창간사는 신문이 인민을 교육하는 기관이라며 2천만 동포의 지식 계발을 목표로 내걸었다.[1] 『신편 한국사』는 창간일을 1906년 6월 17일자로 적고, 국한문으로 쓰되 한자 옆에 루비 활자로 한글 음을 달아 국문만 아는 독자도 읽을 수 있게 했다고 설명한다.[2]

  • 신소설 연재 - 1906년 7월 22일부터 10월 10일까지 이인직의 「혈의 누」를 50회 연재했고, 이어 「귀의 성」을 실었다.
  • 논조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친일 단체 일진회와 친일 대신의 비행을 강하게 비판했다고 하고, 『신편 한국사』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에는 대체로 거리를 두고 지식 계발과 풍속 개량에 힘썼다고 본다. 천도교는 1906년 이용구 등 일진회 세력을 쫓아내 일진회와 갈라섰다.

폐간과 대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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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의 재정이 어려워지면서 창간 1년 만에 문을 닫았다. 마지막 호를 백과사전은 1907년 6월 29일자 제293호로, 『신편 한국사』는 6월 30일자 호외로 적는다. 시설은 이인직에게 넘어갔고(『신편 한국사』는 정부에 매각되었다고 적는다), 1907년 7월 18일부터 이완용 내각의 기관지 『대한신문』으로 바뀌어 이인직이 사장을 맡았다.

대한 제국 시기 신문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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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창간 특징
독립신문 1896 서재필, 순 한글판과 영문판
제국신문 1898 순 한글, 서민층·부녀자 독자
대한매일신보 1904 베델·양기탁, 국채 보상 운동 지원
만세보 1906 천도교 기관지, 「혈의 누」 연재
  1. ↑ 만세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라. 《만세보》·《경향신문》·《대한민보》·《경남일보》, 『신편 한국사』 46권 신문화운동 Ⅱ,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