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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 28조(時務二十八條)는 982년(성종 1) 최승로가 성종에게 올린 상소로, 유교를 나라 다스리는 근본으로 삼고 지방관을 파견하며 지나친 불교 행사를 줄일 것 등을 건의해 고려 전기 국가 체제 정비의 방향을 제시했다.

성종은 즉위한 이듬해 6월 경관 5품 이상에게 정치의 잘잘못을 논하는 글을 올리게 했다. 이때 최승로가 올린 글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앞부분은 태조·혜종·정종·광종·경종 다섯 왕의 정치에서 본받을 점과 경계할 점을 평가한 5조 정적평이고, 뒷부분은 당면 과제에 대한 대책 28개 조항인 시무 28조이다. 당의 오긍이 『정관정요』를 지어 현종에게 태종의 정치를 본받으라고 권한 일을 본보기로 삼았다.[1] 『고려사』 최승로 열전에 실려 전하는데, 28조 가운데 22조만 남아 있다.[2]

  • 유교 정치 - 불교를 믿는 것은 몸을 닦는 근본이고 유교를 행하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근원이라며, 내세를 위한 불교보다 오늘의 급무인 유교 정치를 앞세우자고 했다.
  • 불교 행사와 폐단 축소 - 왕실의 지나친 불사와 공덕재를 줄이고, 연등회·팔관회에 백성을 동원하는 부담을 덜며, 사원이 불보의 돈과 곡식으로 높은 이자를 받는 것을 금하자고 했다.
  • 지방관 파견 - 향리와 토호가 공무를 핑계로 백성을 괴롭히니 외관(지방관)을 두자고 했다. 한꺼번에 어렵다면 우선 10여 주현을 묶어 관리 1명을 보내자고 했다.
  • 국방 - 요충지에 국경을 정하고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한 사람으로 지키게 하여 중앙군의 수자리 부담을 덜자고 했다.
  • 신분 질서 - 신라처럼 관리와 백성의 옷차림에 등급을 두고, 노비가 주인을 거스르는 일을 막자고 했다.
  • 중국 문물 - 중국의 예악과 제도는 따르되 풍속과 생활은 우리 실정에 맞게 하자고 했다.

성종은 이를 받아들여 983년 12목에 처음으로 지방관(목사)을 보냈고, 2성 6부의 중앙 관제와 국자감을 갖추었으며 한때 팔관회를 멈추었다(→ 성종 (고려)).

고려 초 정책 문서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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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지은이·때 내용
훈요 10조 태조(943) 불교 숭상, 연등회·팔관회 유지, 서경 중시(→ 고려 태조)
시무 28조 최승로(982) 유교 정치, 지방관 파견, 불교 행사 축소
봉사 10조 최충헌(1196) 무신 집권 초 폐정 개혁(→ 최씨 무신 정권)
  1. ↑ 시무28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고려사』 권93 열전6 최승로,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