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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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관회(八關會)는 불교의 팔관재계에 하늘·산천·용신을 섬기는 토착 신앙이 어우러진 신라와 고려의 국가 행사로, 고려에서는 해마다 겨울에 열려 외국 상인과 사신이 축하하러 오는 큰 잔치가 되었다.
'팔관'은 살생·도둑질·음행 등 여덟 가지 죄를 금한다는 뜻이다. 원래는 재가 신도가 하루 동안 계율을 지키는 불교 의식이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10월 추수 감사 제천 전통과 합쳐져 나라의 평안과 왕실의 복을 비는 호국 행사가 되었다. 전국의 신앙을 하나의 의식으로 모아 중앙 집권과 사회 통합을 굳히는 구실을 했다.[1]
- 551년(진흥왕 12) 고구려에서 온 승려 혜량을 승통으로 삼고 백고좌 강회와 팔관회를 처음 열었다.
- 572년(진흥왕 33) 전쟁에서 죽은 병사들을 위해 7일 동안 팔관회를 열었다.
- 자장의 건의로 황룡사 구층 목탑을 세운 뒤에도 팔관회를 열었다고 전한다.
- 899년 궁예가 팔관회를 열었고, 미륵 신앙과 엮어 현세의 복을 비는 행사로 바꾸었다.
- 시작 - 고려 태조가 918년 즉위한 해 11월에 열었다.
- 훈요 10조 - 태조는 943년 남긴 훈요 10조 제6조에서 연등회와 팔관회를 소홀히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팔관회는 하늘의 신령과 오악·명산대천·용신을 섬기는 것이라 했다.
- 시기와 장소 - 개경에서는 11월 15일(중동 팔관회), 서경에서는 10월에 열었다.
- 외국인의 하례 - 송 상인, 여진, 탐라, 일본 등이 와서 축하하고 토산물을 바쳤다. 고려는 이를 통해 자신을 중심에 두는 천하관을 드러냈다.
- 폐지와 부활 - 유교 정치를 강조한 성종 때 연등회와 함께 폐지되었다가(987), 현종 때(1010) 다시 열렸다. 이후 고려 말까지 이어졌고, 조선 건국 뒤 폐지되었다.
- 연등회와의 차이 - 연등회는 정월 대보름(뒤에 2월 15일)에 전국에서 등을 밝히고 부처에게 복을 빈 순수한 불교 행사였고, 팔관회는 토착 신앙과 합쳐진 행사였다.
| 사실 | 행사·제도 |
|---|---|
| 송 상인·여진·탐라 사람이 와서 축하하고 토산물을 바침 | 팔관회(고려) |
| 정월 대보름에 등을 밝혀 부처에게 복을 빎 | 연등회(고려) |
| 10월에 하늘에 제사 지냄 | 고구려 동맹, 동예 무천 (→ 한반도의 초기 국가) |
| 초량 왜관에서 일본 상인과 교역함 | 조선 후기 (→ 왜관) |
| 빈민을 구제하려고 기금의 이자로 운영한 기관 | 고려 제위보 (→ 고려의 사회 제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