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만인소
IT 위키
더 많은 작업
영남 만인소(嶺南萬人疏, 1881)는 1881년(고종 18) 2월 이황의 후손 이만손을 소두로 한 영남 유생들이 『조선책략』의 유포와 정부의 개화 정책에 반대해 연명으로 올린 상소이다.
상소는 『조선책략』의 주장을 하나하나 반박했다.[2]
- 중국 - 200년 넘게 신의를 나눈 중국을 두고 황(皇)·짐(朕)을 칭하는 일본의 국서를 받으면 중국에 해명할 길이 없다.
- 일본 - 이미 육지와 바다의 요충지를 차지한 일본이 우리의 허술함을 보고 충돌을 일으키면 막기 어렵다.
- 미국 -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를 남의 말만 듣고 끌어들이면 재물을 요구하고 약점을 노릴 것이다.
- 서학과 기독교 - 나라를 부유하게 하는 법은 옛 제도에 있으며, 기독교 전파는 사교를 퍼뜨리려는 간계이다.
이만손은 책을 가져온 김홍집과 대신들을 규탄하고, 책을 물이나 불에 던져 버리라고 요구했다.
고종은 2월 26일 "사학을 물리치고 정학을 지키는 일은 상소를 기다릴 필요도 없고, 남의 나라 사람이 사사로이 쓴 글은 따질 것이 못 된다"며 물러가라고 명했다. 이만손은 3월에 다시 상소했고, 경기·충청·강원·전라의 유생들이 잇따라 상소해 척사 운동이 전국으로 번졌다(신사 척사 운동). 이만손은 유배되었고, 같은 해 강원도 유생 홍재학은 격렬한 만언소를 올렸다가 처형되었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