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규의 난
IT 위키
더 많은 작업
왕규의 난(王規의 亂, 945)은 고려 혜종 때 외척 왕규가 자신의 외손자 광주원군을 왕으로 세우려고 일으킨 모반 사건으로, 서경의 왕식렴 세력이 개입해 진압되었고 이를 계기로 정종이 즉위했다.
왕규는 광주(廣州)를 근거지로 한 호족으로, 태조를 섬겨 대광에 올랐다. 두 딸을 태조의 제15·16비로 들였고, 제16비가 낳은 아들이 광주원군이다. 그는 태조 말년 왕실의 외척으로 큰 세력을 이루었으나 혜종의 왕권은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고려 초에는 왕이 여러 호족과 혼인해 왕자가 많았으므로, 태조가 죽은 뒤 외척 호족들 사이에서 왕위 다툼이 벌어졌다. 왕규의 난은 그 대표적인 사건이다.[1]
『고려사』 왕규 열전에 따르면, 945년(혜종 2) 왕규는 먼저 혜종의 동생 왕요와 왕소가 모반한다고 모함했으나 혜종은 믿지 않고 오히려 큰공주를 왕소에게 시집보내 결속을 다졌다. 그러자 왕규는 밤에 일당을 왕의 침소에 들여보냈는데, 혜종이 이를 알아차리고 한 주먹에 쳐 죽였다. 다시 최지몽의 말에 따라 혜종이 몰래 거처를 옮겼을 때, 왕규가 일당을 이끌고 벽을 뚫고 들어갔으나 침실은 비어 있었다. 혜종은 이 일들을 알고도 왕규를 처벌하지 않았다.[2]
- ↑ 1.0 1.1 왕규의 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 ↑ 『고려사』 권127 열전40 반역1, 왕규가 광주원군을 왕으로 옹립하려고 모반하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