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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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古朝鮮)은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요동과 한반도 서북부에 성립한 한국사 최초의 국가로, 단군 건국 전승을 지니며 위만 집권 이후 철기 문화와 중계 무역으로 성장하다가 기원전 108년 한에 멸망했다.
'고조선'은 이성계가 세운 조선과 구별하려고 붙인 이름이다. 『삼국유사』는 단군왕검이 기원전 2333년에 아사달에 도읍하여 조선을 세웠다고 전한다. 비파형 동검·탁자식 고인돌·미송리식 토기가 함께 나오는 지역을 고조선의 세력 범위로 보는 견해가 많다.[1]
환인의 아들 환웅이 무리 3,000을 이끌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풍백·우사·운사를 거느리고 다스렸으며, 곰이 변한 웅녀와 혼인하여 단군왕검을 낳았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삼국유사』와 이승휴의 『제왕운기』 등에 실려 있다. 『삼국사기』에는 없다. 강화 마니산의 참성단은 단군이 하늘에 제사하던 곳이라고 전한다.
이야기 속에서 하늘을 숭배하는 이주 집단과 곰을 숭배하는 토착 집단의 결합, 농경을 중시하는 사회, 제사장(단군)과 정치 지배자(왕검)를 겸한 제정일치 사회를 읽어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 왕위 세습 - 기원전 4세기 무렵 왕을 칭하고 연과 맞섰으며, 부왕·준왕 때 왕위를 세습하고 상·대부·장군 같은 관직을 두었다.
- 연의 침략 - 기원전 3세기 초 연나라 장수 진개의 공격으로 서쪽 땅을 잃었다.
- 위만 조선 - 기원전 194년 무렵 연에서 망명한 위만이 준왕을 몰아내고 왕이 되었다. 위만 조선은 철기 문화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고, 남쪽의 진과 한 사이에서 중계 무역으로 이익을 얻었다.[2]
- 멸망 - 위만의 손자 우거왕은 주변 나라들이 한과 직접 통하는 길을 막았다. 기원전 109년 한의 사신 섭하가 돌아가는 길에 배웅 나온 조선의 비왕 장을 죽이고 요동 동부도위가 되자, 조선은 군사를 보내 섭하를 죽였다.[2] 이를 구실로 쳐들어온 한 무제의 군대를 1년 가까이 막았으나, 지배층의 내분으로 기원전 108년 왕검성이 함락되었다. 한은 그 땅에 군현(이른바 한사군)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