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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관 파천(俄館播遷, 1896)은 을미사변 뒤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이 1896년 2월 11일 왕세자와 함께 몰래 경복궁을 빠져나와 서울 정동의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겨 약 1년 동안 머문 사건이다.

서울 정동에 남은 옛 러시아 공사관 탑

'아관'은 러시아(아라사) 공사관, '파천'은 임금이 도성을 떠나 피란한다는 뜻이다. 1895년 일본이 명성 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을 일으킨 뒤 친일 김홍집 내각이 단발령 등 을미개혁을 밀어붙이자 전국에서 을미의병이 일어났다. 같은 해 11월 고종을 미국·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기려던 춘생문 사건은 실패했지만, 여기에 가담한 이범진·이완용 등 친러·친미 세력이 러시아 공사 베베르·스페이예르와 손잡고 다시 파천을 꾀했다.[1]

  • 러시아 병력 입경 - 파천 전날 러시아는 공사관 보호를 명목으로 병력을 서울에 들였다. 백과사전은 해병 135명으로, 『신편 한국사』는 영국 측 관찰 기록을 들어 장교 4명과 수병 100명, 야포 1문으로 적는다.[2]
  • 파천 - 2월 11일 새벽 고종과 왕세자는 궁녀의 가마를 타고 경복궁 영추문을 나와 러시아 공사관으로 갔다.
  • 내각 교체 - 고종은 곧바로 친일 내각 대신들의 체포를 명했다. 총리대신 김홍집과 정병하는 군중에게 살해되었고, 유길준 등은 일본으로 망명했다. 박정양을 총리대신으로 하는 친러·친미 내각이 들어섰다.
  • 개혁 중단 - 새 내각은 단발령을 거두고 의병을 달랬으며, 23부로 바꾸었던 지방 제도를 13도로 고치는 등 갑오·을미개혁의 일부를 되돌렸다.[1]
  • 러시아의 영향력 강화 - 러시아 군사 교관과 재정 고문이 들어왔다. 러시아와 일본은 조선을 빼고 베베르·고무라 각서(1896.5)와 로바노프·야마가타 의정서(1896.6)를 맺어 서로의 세력을 조정했다.
  • 이권 침탈 - 러시아·미국·일본 등 열강이 광산·철도·삼림 등 이권을 앞다투어 가져갔다. 이에 맞서 1896년 7월 독립 협회가 만들어졌다.
  • 환궁과 대한 제국 - 고종의 환궁을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지자 고종은 1897년 2월 20일 경운궁(덕수궁)으로 돌아왔고, 그해 10월 황제로 즉위해 대한 제국을 선포했다(→ 광무개혁).
  • 러시아의 이권 요구 - 1897~1898년 러시아가 부산 절영도를 석탄 기지로 빌려 달라고 요구했으나, 독립 협회의 반대로 막혔다.

전후 사건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사건 시기 내용
삼국 간섭 1895.4 러시아·프랑스·독일이 일본의 랴오둥반도 차지를 막음
을미사변 1895.10 일본이 명성 황후 시해
아관 파천 1896.2~1897.2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김
절영도 조차 요구 1897~1898 러시아의 요구를 독립 협회가 저지 (→ 독립 협회)
러일 전쟁 1904~1905 전쟁 중 일본이 독도를 불법 편입(1905.2)
  1. ↑ 1.0 1.1 아관파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2. ↑ 스페이에르의 내한과 고종의 아관파천, 『신편 한국사』 41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