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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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의거(李在明義擧, 1909)는 1909년 12월 22일 독립운동가 이재명(1887~1910)이 서울 명동 성당(종현 천주교당) 앞에서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을 칼로 찔러 중상을 입힌 일이다.
- 모의 - 1909년 11월 무렵 이재명은 서울과 평양의 동지들을 모아 매국 대신을 처단하기로 했다. 평양 모임에서 이재명·이동수는 이완용을, 김정익·조창호는 일진회의 이용구를 맡기로 나누었다.[2] 백과사전은 송병준까지 처단 대상으로 꼽았다고 적는다.[3]
- 의거 - 12월 22일 명동 성당에서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의 추도식이 열렸다. 군밤 장수로 꾸미고 성당 문밖에서 기다리던 이재명은 오전 11시 반 무렵 인력거를 타고 나오는 이완용에게 달려들어 막아서는 인력거꾼을 베고 이완용을 여러 차례 찔렀다.[2] 공훈 기록과 백과사전은 허리를 먼저 찌르고 어깨 등을 더 찔렀다고 하고, 『신편 한국사』는 어깨를 먼저 찔렀다고 적는다.[1] 이완용은 중상을 입었으나 목숨을 건졌다.
- 재판 - 이재명은 현장에서 붙잡혀 1910년 5월 18일 경성 지방 재판소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같은 해 9월 30일 처형되었다. 법정에서 자신의 일은 흉행이 아니라 의행이며 2천만 민족이 찬성한다고 외쳤다.[3]
- 동지들의 형량 - 김정익·이동수·조창호 등은 징역 15년을 받았다. 김병록의 형량은 『신편 한국사』가 15년, 백과사전이 10년으로 다르게 적는다.[2]
정부는 1962년 이재명에게 건국 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