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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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張保皐, ?~846)는 신라 하대에 완도에 청해진을 세우고 남해의 해상권을 쥐어 당·신라·일본을 잇는 무역을 이끈 인물로, 본래 이름은 궁복(弓福) 또는 궁파이다.
- 해적 소탕 - 청해진을 근거로 해적을 몰아내고 남해와 황해의 바닷길을 장악했다.
- 국제 무역 - 당에는 견당매물사가 이끄는 교관선을, 일본에는 회역사를 보내 무역했다. 개인 상인이 아니라 독자 세력으로서 사절을 보낸 것이다.
- 법화원 - 당 산둥반도 문등현 적산촌에 절 법화원을 세워 그곳 신라인의 구심점으로 삼았다. 일본 승려 엔닌은 『입당구법순례행기』에 법화원과 장보고의 도움을 기록했다.
- 통일 신라의 무역항 - 당으로 건너가는 길목인 당항성(지금의 화성)과 서남해의 영암, 동해안의 울산항이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했다. 울산항에는 아라비아 상인도 드나들었다.
- 신무왕 옹립 - 836년 왕위 다툼에서 밀린 김우징이 청해진으로 피신해 왔다. 838년 희강왕이 죽고 민애왕이 즉위하자, 장보고는 군대를 보내 민애왕을 몰아내고 839년 김우징을 신무왕으로 세웠다. 그 공으로 감의군사가 되고 식읍 2천 호를 받았다.
- 딸의 왕비 책봉 무산 - 신무왕의 아들 문성왕이 장보고의 딸을 둘째 왕비로 맞으려 했으나, 조정 신하들이 바다 섬사람의 딸은 왕실의 배필이 될 수 없다며 막았다.
- 반란과 피살(846) - 이에 원한을 품고 청해진을 근거로 반란을 일으켰으나, 조정이 보낸 옛 부하 염장에게 암살당했다. 851년 청해진은 폐지되고 주민은 벽골군(김제)으로 옮겨졌다.
장보고의 활동은 신라 하대에 중앙의 통제가 약해지고 지방 세력이 군사력과 경제력을 키워 가는 흐름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