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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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진(淸海鎭, 828~851)은 신라 하대 흥덕왕 3년 장보고가 왕의 허락을 받아 지금의 전남 완도에 세운 해군 기지이자 무역 거점으로, 장보고가 죽은 뒤 851년 문성왕 때 없어졌다.

당에서 군인으로 활약하던 장보고는 해적이 신라 사람을 잡아다 노비로 파는 것을 보고 돌아와, 828년 군사 1만 명으로 완도에 진을 세우고 청해진 대사가 되었다. 청해진 대사는 신라의 관직 체계에 없던 특별한 직함이어서, 청해진은 처음부터 장보고 개인을 중심으로 한 독자적인 세력의 성격이 강했다.[1]
- 바닷길의 길목 - 완도는 당의 양쯔강 하구·산둥반도에서 흑산도를 거쳐 한반도 남해안과 일본 규슈로 이어지는 바닷길의 길목이었다.
- 장도(장군섬) - 진영의 중심은 완도읍 장좌리 앞바다의 작은 섬 장도이다. 섬 둘레에 나무 울타리(목책)를 촘촘히 박아 배가 함부로 다가오지 못하게 했고, 섬을 외성·내성으로 나누어 쌓았다. 오늘날 이 일대는 사적 '완도 청해진 유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 해적 소탕 - 남해와 황해의 해적을 몰아내고 바닷길을 장악했다.
- 국제 무역 - 당에는 교관선을, 일본에는 회역사가 이끄는 무역선을 보내 당·신라·일본을 잇는 중계 무역을 이끌었다. 골품제에 막혀 출세하지 못한 사람과 떠돌던 백성이 많이 모여들었다.
- 중앙 정치 개입 - 836년 왕위 다툼에서 밀린 김우징이 청해진으로 피신해 왔고, 장보고는 군대를 보내 민애왕을 몰아내고 그를 신무왕으로 세웠다(→ 장보고).
장보고가 딸을 문성왕의 왕비로 들이려다 귀족들의 반대로 실패하자 조정과 맞섰고, 조정이 보낸 염장에게 암살당했다. 『삼국사기』는 이 일을 846년(문성왕 8)에 적었다. 그 뒤에도 부장 이창진 등이 세력을 이어 가려 했으나 염장의 군대에 무너졌다. 『삼국사기』는 851년(문성왕 13) 2월 청해진을 없애고 그곳 사람들을 벽골군(지금의 전북 김제)으로 옮겼다고 적었다.[2] 이로써 청해진은 해군 기지와 무역 거점의 기능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