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산 법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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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산 법화원(赤山 法花院)은 장보고가 당의 산둥반도 동쪽 끝 문등현 청녕향 적산촌에 세운 절로, 당에 사는 신라인들이 모이는 중심이자 신라·당·일본을 오가는 사람들의 쉼터였다.
일본 천태종 승려 엔닌(원인)은 당에 구법하러 갔다가 839년 6월 7일 적산에 배를 대고 법화원에 머물렀다. 그의 여행기 『입당구법순례행기』에 따르면 법화원은 본래 장보고가 처음 세운 절로, 오래전부터 장전(절에 딸린 농토)을 두어 한 해 쌀 500석을 거두어 절의 양식으로 삼았다. 겨울에는 『법화경』을, 여름에는 8권짜리 『금광명경』을 강설했다. 당시 이곳에는 신라 통사 압아 장영 등이 있었다.[1]
- 신라인 사회의 구심점 - 산둥 지방 곳곳에 흩어져 살던 신라인들을 정기 강경 법회로 모았다. 한때 30여 명의 승려가 머물렀다.
- 신라식 의례 - 해마다 8월 15일 전후 사흘 동안 신라의 풍속대로 잔치를 열었다. 엔닌이 839년 11월 22일 기록한 강경 의식은 신라 말로 부처를 부르고 문답으로 경전을 풀이하는 것으로, 신라의 법회 의식을 자세히 전하는 드문 자료이다.[2]
- 해상 활동의 기도처 - 바다를 생업으로 삼던 신라인과 장보고 선단의 안전을 비는 곳이었다. 엔닌을 비롯한 일본 승려들도 이 절과 장보고 세력의 도움을 받았다.[1]
- ↑ 1.0 1.1 엔닌, 『입당구법순례행기』 권2 개성 4년 6월 7일, 적산 법화원에 관한 정보를 얻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21 확인.
- ↑ 중국 법화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21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