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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보림사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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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보림사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長興 寶林寺 鐵造 毘盧遮那佛 坐像)은 9산 선문 가운데 가지산문의 중심 사찰인 전라남도 장흥 보림사에 있는 통일 신라의 쇠로 만든 불상으로, 왼팔 뒷면의 명문으로 858년(헌안왕 2)에 만든 것을 알 수 있다.

장흥 보림사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

높이 273cm로 1963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왼팔 뒷면에 새긴 명문에 따르면 858년(헌안왕 2) 7월 17일 무주 장사의 부관이던 김수종이 발원해 만들었다. 보림사의 보조선사(체징) 탑비에는 859년 부수 김언경이 자기 재산을 들여 쇠 2,500근으로 노사나불을 만들었다고 적혀 있어, 858년에 시작해 859년에 완성한 것으로 본다.[1]

보림사와 가지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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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의가 821년 당에서 남종선을 들여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설악산 진전사에 숨었고, 그 법은 염거를 거쳐 체징에게 전해졌다. 체징은 859년(헌안왕 3) 왕의 요청으로 보림사에 머물렀고, 이때부터 김언경 같은 중앙 귀족의 후원을 받아 가지산문이 이루어졌다. 가지산문은 이처럼 지방 호족뿐 아니라 왕실과 중앙 귀족의 도움으로 자리 잡은 산문이었다.[2]

  • 지권인 - 왼손 집게손가락을 오른손으로 감싸 쥔 지권인을 하고 있다. 지권인은 비로자나불의 손 모양이다.
  • 양식 - 몸집은 당당하지만 옷 주름이 힘없이 늘어지고 표현이 도식적이어서 9세기 후반 불상 양식의 앞선 모습을 보여 준다. 이 양식은 철원 도피안사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865) 등으로 이어졌다.[1]
  • 철불의 유행 - 9세기부터 선종 사찰을 중심으로 철불이 많이 만들어졌으며, 승탑·탑비와 함께 신라 하대 선종 미술을 대표한다.

신라·고려의 불상과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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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 시대 특징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 고구려 명문이 있는 고구려 금동불 (→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
석굴암 본존불 통일 신라 중대 화강암으로 만든 석굴 사원의 본존 (→ 석굴암)
보림사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 통일 신라 하대 858년 명문, 가지산문, 철불
논산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 고려 초 지방색이 강한 거대 석불 (→ 논산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
  1. ↑ 1.0 1.1 장흥 보림사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21 확인.
  2. ↑ 가지산문, 『신편 한국사』 11,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 2026-10-21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