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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선종(禪宗)은 경전의 글귀보다 참선과 수행으로 자기 마음속의 불성을 깨닫는 것을 중시하는 불교의 흐름이 한국에 들어와 이어진 역사로, 신라 하대에 지방 호족의 후원을 받아 크게 퍼지고 고려의 조계종, 조선의 선종으로 이어졌다.

선종은 석가가 영산에서 말없이 꽃을 들어 보이자 가섭만이 그 뜻을 알아차렸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며,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 하여 불심종이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달마가 전한 뒤 혜능·신수 등이 넓혔다. 선종은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는 불립문자, 본성을 보아 도를 깨친다는 견성오도를 내세우며, 바깥 인연을 끊고 깊은 산속에서 좌선하는 수행을 중시했다.[1]

  • 신라 하대의 유행 - 신라 중대까지는 경전 공부를 중시하는 교종이 주류였다. 선종은 개인이 지닌 불성의 깨달음을 앞세워, 중앙 정부의 간섭을 벗어나 지방에 근거를 두려던 호족의 생각과 잘 맞았다. 그래서 왕실의 권위가 떨어지고 호족이 일어난 신라 하대에 크게 퍼졌다.[1]
  • 9산 선문 - 821년 당에서 돌아온 도의의 가지산문(장흥 보림사) 등 아홉 산문이 지방 곳곳에 자리 잡았다(→ 9산 선문, 장흥 보림사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 승려의 사리를 모신 승탑과 탑비가 많이 세워졌다.
  • 고려의 조계종 - 9산 선문의 흐름은 고려 때 조계종이라는 종파 이름으로 묶였다. 조계는 중국 선종의 6조 혜능을 가리킨다. 조계종이라는 이름은 의천이 천태종을 연 뒤부터 보이며, 1172년에 세운 탄연의 비문이 그 이름을 새긴 첫 사례이다. 지눌의 수선사 결사로 세력이 커져 고려 후기 불교계의 중심이 되었다(→ 의천, 지눌, 고려의 불교).
  • 조선의 선교 양종 - 1424년(세종 6) 여러 종파를 선종과 교종 둘로 합칠 때 조계종은 천태종·총남종과 함께 선종으로 묶였다. 뒤에 이 두 종파마저 없어졌으나, 휴정과 유정은 스스로 조계의 법맥을 이었다고 했다.[2]

교종·다른 사상과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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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중시한 것 대표적인 모습
선종 참선과 수행을 통한 깨달음, 불립문자 9산 선문, 승탑, 지방 호족의 후원
교종 경전의 이해와 교리 화엄종의 의상, 법상종, 중앙 귀족의 후원
유교 『시경』·『서경』·『역경』 같은 경전, 충·효 국학 (신라), 설총
도교 신선 사상, 불로장생, 초제 연개소문의 도교 장려, 고려의 복원궁 (→ 한국의 도교)
동학 인내천, 시천주, 인간 평등 최제우(1860) (→ 동학)
  1. ↑ 1.0 1.1 선종의 대두, 『신편 한국사』 11,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 2026-10-21 확인.
  2. ↑ 조계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21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