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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과(田柴科)는 고려가 문무 관리와 군인 등 나라의 직역을 맡은 사람에게 등급에 따라 곡식을 거둘 땅(전지)과 땔감을 얻을 땅(시지)의 수조권을 나누어 준 토지 제도로, 976년(경종 1) 처음 만들어져 1076년(문종 30) 완성되었다.

나누어 준 것은 땅 자체가 아니라 그 땅에서 조세를 거둘 권리(수조권)였다. 관직이나 직역을 그만두거나 죽으면 원칙적으로 나라에 돌려주어야 했다. 이에 앞서 태조는 940년(태조 23) 후삼국 통일에 공을 세운 관리와 군사에게 관계(官階)를 따지지 않고 성품·행실과 공로에 따라 역분전을 주었다.[1][2]

  • 시정 전시과(976, 경종 1) - 광종 때 정한 자삼·단삼·비삼·녹삼의 네 가지 공복을 틀로 삼아, 관품과 함께 인품을 기준으로 등급을 매겼다. 현직 관리(직관)와 산관이 모두 받았다. 최고액은 전지·시지 각 110결이었다. 개국 공신과 호족 등 옛 세력과 새 관료 사이의 타협을 반영한 것으로 본다.
  • 개정 전시과(998, 목종 1) - 인품 기준을 없애고 관직의 높낮이에 따라 18과로 나누었다. 산관은 현직보다 몇 과 아래로 받았고, 문관이 무관보다 우대되었다. 제1과는 전지 100결·시지 70결이었다.
  • 경정 전시과(1076, 문종 30) - 18과를 유지하되 현직 관리에게만 주고 산관은 대상에서 뺐다. 무관 차별이 줄고 군인 대우가 나아졌으며, 향직도 대상에 넣었다. 제1과는 전지 100결·시지 50결로, 시지가 크게 줄었다. 이로써 전시과가 완비되었다.
  • 시정 전시과의 시행 연도를 『고려사』는 경종 원년(976) 11월로 적는데, 우리역사넷 해설은 975년으로 적어 엇갈린다. 1014년(현종 5)과 1034년(덕종 3)에도 개정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내용은 전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 토지

편집 원본 편집
  • 과전(양반전) - 관리에게 주는 일반 전시. 원칙적으로 세습되지 않았다.
  • 공음전 - 1049년(문종 3) 제도화된 땅으로, 5품 이상 관리(또는 공을 세운 관리)에게 주어 자손에게 물려줄 수 있었다. 음서와 함께 문벌 귀족의 특권을 뒷받침한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 군인전 - 개경의 중앙군에게 주어 군역을 이어받으면 함께 물려받았다.
  • 한인전 - 관직을 받지 못한 6품 이하 관리의 자제 등 한인에게 준 땅.
  • 구분전 - 자손이 없는 하급 관리·군인의 유가족과 늙은 군인에게 생계를 위해 준 땅.
  • 외역전 - 향리에게 직역의 대가로 주어 세습되었다.
  • 공해전 - 중앙과 지방 관청의 운영 경비를 대는 땅.
  • 내장전·사원전 - 왕실과 사원의 경비를 대는 땅.

무신 정변 뒤 권세가들이 땅을 빼앗아 농장을 넓히고 수조권을 겹쳐 차지하면서 전시과는 무너졌다. 원 간섭기에는 관리에게 녹봉 대신 경기 땅을 나누어 주는 녹과전을 두었고, 고려 말 1391년(공양왕 3) 과전법으로 대체되었다.

시대별 토지 제도와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제도 때 내용
관료전 지급, 녹읍 폐지 687·689년, 신라 신문왕 관리에게 수조권만 주는 관료전 (→ 신문왕)
역분전 940년, 고려 태조 공로와 인품에 따라 지급 (→ 고려 태조)
전시과 976~1076년, 고려 관리에게 전지와 시지의 수조권 지급
과전법 1391년, 고려 공양왕 경기 땅에 한해 전직·현직 관리에게 지급 (→ 과전법)
직전법·관수관급제 1466·1470년, 조선 세조·성종 현직에게만, 국가가 대신 거두어 지급 (→ 조선 전기의 토지 제도)
  1. ↑ 전시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2. ↑ 전시과의 시행, 우리역사넷 사료로 본 한국사(『고려사』 권78 식화1 전제 전시과),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