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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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도감(整治都監, 1347~1349)은 고려 충목왕 때 권세가의 불법 농장과 원 간섭기의 여러 폐단을 바로잡으려고 둔 개혁 기구로, 부원 세력을 처벌하다가 정동행성 이문소의 반발과 원의 제지로 좌절되었다.
- 개혁안 - 11개 항목의 '정리도감장'을 내세워 지방관의 탐학, 정동행성 같은 원 간섭 기구의 폐해, 토지 탈점·고리대·압량위천으로 생긴 농장, 어지러운 수취 체제를 바로잡으려 했다.
- 양전 - 정치관을 각 도에 보내 백성의 땅을 측량하게 했다.
- 부원 세력 처벌 - 기황후의 친척 기삼만과 기주를 잡아 가두었는데, 기삼만이 옥에서 죽었다. 노책·전영보 등도 인구를 숨기거나 양인을 억지로 노비로 삼은 죄로 처벌했다.[2]
기삼만이 죽자 원의 기구인 정동행성 이문소가 정치관 서호·전녹생을 가두며 반격했다. 원이 사신을 보내 개혁을 격려해 한때 풀려났으나, 1347년 7월부터 이문소가 다시 정치관을 잡아들였고 원은 백문보 등 정치관 16명을 곤장으로 다스려 정치도감의 활동이 부당하다고 판정했다. 원은 그 뒤 정치도감을 다시 두게 했지만 개혁은 되살아나지 못했고, 본격적인 활동은 석 달 남짓 만에 무너졌고, 충목왕이 죽고 충정왕이 즉위한 뒤 1349년(충정왕 1) 폐지되었다.[2][3] 개혁의 과제는 뒷날 공민왕의 반원 개혁과 신돈이 이끈 전민변정도감으로 이어졌다.
- ↑ 『고려사』 권37 세가 충목왕 3년 2월 기축, 정치도감을 설치해 33명의 속관을 두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21 확인.
- ↑ 2.0 2.1 2.2 충목왕대의 정치도감, 『신편 한국사』 19,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 2026-10-21 확인.
- ↑ 3.0 3.1 정치도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21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