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정고금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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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정고금예문(詳定古今禮文)은 고려 인종 때 최윤의 등 17명이 옛날과 지금의 예법을 모아 50권으로 엮은 의례서로, 무신 집권기 강화도에서 금속 활자로 28부를 찍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정식 이름은 『상정예문』(詳定禮文)이며 『고금상정예문』이라고도 부른다. 고려는 건국 뒤 여러 대에 걸쳐 의례를 덧붙이고 빼면서 기준이 어지러워졌는데, 인종이 평장사 최윤의 등 17명에게 명해 옛날과 당시의 서로 다른 예문을 모아 참작하고 절충하게 했다. 이렇게 엮은 50권이 세상에 쓰이자 예법이 한 가지 기준을 갖게 되었다.[1] 최윤의가 1162년(의종 16)에 죽은 점 등을 들어 실제 완성은 의종 때로 보는 견해도 있다. 예종 때 의례를 정하려고 둔 예의상정소의 작업을 이어 고려의 예제를 정리한 성과로 평가된다.[2] 책은 전하지 않는다.
- 발문의 내용 - 최우(최이)의 이름으로 이규보가 대신 쓴 발문이 이규보의 문집 『동국이상국집』에 실려 있다. 오래되어 책장이 떨어지고 글자가 없어지자 최충헌이 두 본을 고쳐 만들어 한 본은 예관에게, 한 본은 집에 두었다.
- 강화 천도와 보존 - 1232년 강화도로 도읍을 옮길 때 예관이 책을 챙기지 못했으나 최씨 집안에 둔 한 본이 남았다. 최우는 이것을 주자(鑄字, 금속 활자)로 28본 찍어 여러 관청에 나누어 보관하게 했다.[1]
- 인쇄 시기 - 발문에는 연도가 적혀 있지 않다. 강화 천도(1232) 뒤이고 이규보가 죽은 1241년 이전이므로, 흔히 1234년(고종 21) 무렵으로 본다.
- 의의 - 책이 남아 있지 않아 실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1377년 직지심체요절보다 140여 년 앞서 고려가 금속 활자로 책을 찍었음을 보여 주는 기록이다.
- ↑ 1.0 1.1 『동국이상국집』 후집 권11 「신서상정례문발미」, 인쇄술의 발달 - 팔만대장경과 상정고금예문, 사료로 본 한국사,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 2026-10-21 확인.
- ↑ 상정고금예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21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