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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중원(濟衆院)은 1885년 미국 북장로회 의료 선교사 알렌의 건의를 받아들여 조선 정부가 서울 재동에 세운 최초의 서양식 국립 병원으로, 처음 이름은 광혜원이었다.

1885년 무렵의 제중원

1884년 갑신정변 때 크게 다친 민영익을 알렌이 서양 의술로 살려 내자 고종의 신임을 얻었고, 알렌은 서양식 병원을 세우자고 건의했다. 정부는 정변으로 처형된 홍영식의 집(지금의 헌법재판소 자리)을 병원으로 내주고 광혜원(廣惠院)이라 이름 지었으나, 2주쯤 뒤 제중원으로 고쳐 처음부터 소급해 썼다. 개원일은 자료마다 다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음력 2월 29일(양력 4월 14일)로, 의사학 연구는 양력 4월 10일로 적으며, 이름을 바꾼 날은 양력 4월 26일(음력 3월 12일)로 같다.[1][2]

  • 진료 - 하루 70명까지 환자를 보았다. 알렌에 이어 헤론·빈턴·에비슨 등 선교 의사가 진료했고, 1886년 여의사 엘러스가 와서 여성 진료를 맡는 부인부를 두었다.
  • 이전 - 환자가 늘자 1887년 초 남부 구리개(지금의 을지로 입구 부근)로 옮겼다.
  • 의학 교육 - 1886년 3월 29일 서양 의학을 가르치는 제중원 의학당이 문을 열어 학생 12명이 영어·화학·해부 등을 배웠으나 정식 졸업생은 나오지 못했다.[3]
  • 선교부 이관 - 관리들의 부패로 운영이 어려워지자 1894년 경영권이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로 넘어갔다. 같은 해 갑오개혁으로 내무아문 아래 위생국이 생기면서 정부 기구로서의 제중원은 없어졌다.
  • 세브란스 병원 - 미국 실업가 세브란스의 기부로 1904년 남대문 밖에 새 병원을 지어 세브란스 병원이 되었고, 이것이 오늘날 연세대학교 의료원으로 이어졌다.[1]

개항기 근대 시설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시설 때 하는 일
박문국 1883년 『한성순보』 발행
우정총국 1884년 우편 사무, 개국 축하연에서 갑신정변
제중원(광혜원) 1885년 알렌의 건의로 세운 최초의 서양식 국립 병원
한성 전기 회사 1898년 서울의 전차·전등 사업
광제원 1900년 대한 제국의 국립 병원 (광무개혁)
  1. ↑ 1.0 1.1 제중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2. ↑ 박형우·이경록·왕현종, 「재동 제중원의 규모와 확대 과정」, 『의사학』 9권 1호, 대한의사학회, 2000, 2026-10-19 확인.
  3. ↑ 백성을 구한 집!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병원 '제중원', 내 손안에 서울, 서울특별시, 2023-07-12,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