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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은 고려 현종 때인 1011년 거란의 침입을 부처의 힘으로 물리치려는 뜻에서 새기기 시작한 우리나라 최초의 대장경으로, 경판은 1232년 몽골의 침입 때 불타 없어졌다.

대장경은 경(부처의 가르침)·율(계율)·논(경과 율의 해석)을 모은 불교 경전의 총서이다. 991년 송에서 새긴 대장경(개보장)이 고려에 들어오자 고려도 스스로 대장경을 만들 준비를 했다. 1010년 거란이 2차로 침입해 현종이 남쪽으로 피난하고 거란군이 개경에서 물러나지 않자, 왕과 신하들이 대장경판을 새기기로 서원했더니 거란군이 물러갔다고 이규보가 「대장각판군신기고문」에 적었다.[1]

  • 조판 시기 - 1011년에 시작했다. 현종 재위 중(1029년 무렵)에 송 대장경과 같은 분량의 판각을 마치고, 그 뒤 새로 번역된 경전을 덧붙여 선종 때(1087년 무렵) 완성한 것으로 본다. 완성 연도에는 여러 견해가 있다.
  • 규모와 형식 - 약 6천 권에 이른다. 두루마리(권자본) 형식이며 송판을 그대로 베끼지 않고 고려가 독자적으로 새겨 글씨와 판각이 정교하다.
  • 보관과 소실 - 경판은 대구 팔공산 부인사에 보관했으나 1232년 몽골의 2차 침입 때 불탔다.
  • 현재 - 경판은 없어졌지만 이 경판으로 찍은 인쇄본이 국내에 300여 권, 일본 교토 난젠지와 쓰시마 등에 상당수 남아 있다.

고려의 대장경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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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외적의 침입을 겪을 때마다 부처의 힘에 기대어 나라를 지키려 했다(호국 불교).

  • 초조대장경 - 현종 때 시작. 거란 침입이 계기.
  • 교장 - 문종의 아들인 승려 의천이 송·요·일본에서 모은 경전 주석서를 『신편제종교장총록』으로 정리하고, 흥왕사에 교장도감을 두어 간행했다(1091~). '속장경'이라고도 한다.
  • 재조대장경 - 몽골의 침입으로 초조대장경이 불타자 무신 정권의 최우가 대장도감을 두어 1236년부터 1251년까지 다시 새겼다. 경판 수가 8만 장이 넘어 팔만대장경이라 부르며, 지금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에 보관되어 있다. → 최씨 무신 정권

다른 인쇄물과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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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쇄물
거란 침입 때 조판 시작, 부인사에 보관하다 몽골 침입으로 소실 초조대장경
의천이 교장도감에서 간행 교장(속장경)
몽골 침입 때 대장도감에서 조판, 해인사에 보관 재조대장경(팔만대장경)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 활자로 인쇄 직지심체요절
  1. ↑ 초조대장경,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