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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은 고려 고종 때 몽골의 침입을 부처의 힘으로 물리치려는 뜻에서 대장도감을 두고 새긴 대장경 목판으로, 경판이 8만 장을 넘어 이렇게 부르며 지금 합천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다.

대장경은 부처의 가르침(경)·계율(율)·해설(논)의 삼장을 모은 불교 경전의 총서이다. 고려는 현종 때 거란의 침입을 계기로 초조대장경을 새겼는데, 이 경판이 1232년(고종 19) 몽골의 2차 침입 때 대구 부인사에서 불타 버렸다. 강화도로 도읍을 옮겨 몽골과 싸우던 고려 조정은 임시 기구인 대장도감을 두고 대장경을 다시 새겼다. 그래서 재조대장경이라고도 하고, 고려 때 새겼다 하여 고려대장경, 해인사에 있어 해인사 대장경판이라고도 한다. 무신 집권자 최우가 재물을 내어 큰 힘이 되었다.[1]

  • 기간 - 『고려사』를 따라 흔히 1236년부터 1251년까지 16년 동안 새겼다고 한다. 그런데 경판 끝에 새긴 간행 기록을 조사해 보면 실제 판각은 1237년(고종 24)에 시작해 1248년(고종 35) 『대장목록』을 끝으로 마쳤다. 그래서 16년은 준비 기간까지 합친 것으로 본다.[1] 국가유산청도 조성 시기를 1237~1248년으로 적었다.[2]
  • 새긴 곳 - 대장도감 아래 분사대장도감을 경상도 남해에 두고 이곳에서 나무를 다듬고 판을 새겼다. 강화 선원사에서 새겼다는 설이 오래 퍼져 있었으나, 선원사는 판각이 거의 끝난 1245년에 지어졌으므로 지금은 남해에서 새긴 것으로 본다.
  • 교정 - 개태사 승통 수기가 북송의 관판 대장경, 거란 대장경, 초조대장경을 서로 맞대어 틀린 글자를 바로잡았다. 이 때문에 내용이 가장 정확한 대장경으로 평가되며, 지금은 전하지 않는 북송판·거란판의 내용을 알려 주는 자료이기도 하다.[2]
  • 규모 - 1,496종의 경전을 담았다. 권수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6,561권, 국가유산청이 6,568권으로 적었다. 경판 수도 고려 때 새긴 것을 7만 8,500여 장으로 보는 설명과, 일제 강점기 조사에서 조선 시대에 다시 새긴 판까지 합쳐 8만 1,258장으로 센 기록이 함께 전한다.

경판은 처음 강화도 성 서문 밖의 대장경판당에 두었다. 1251년(고종 38) 고종이 이곳에 가서 완성을 축하했다. 이후 강화 선원사를 거쳐 1398년(태조 7) 합천 해인사로 옮겨졌고, 해인사 장경판전에 보관되어 있다. 조선 초에는 일본이 거듭 인쇄본을 청해 왜구에게 잡혀간 사람을 돌려받는 대가로 주기도 했다. 대장경판은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고,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되었다. 경판을 보관하는 장경판전은 1995년 세계 문화유산에 올랐다.[2]

고려의 대장경과 인쇄물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이름 때 특징
초조대장경 현종~선종 거란 침입 때 새김, 몽골 2차 침입 때 부인사에서 불탐
교장(속장경) 선종~숙종 의천이 교장도감에서 간행, 목록은 『신편제종교장총록』
팔만대장경 고종(1236~1251) 몽골 침입 때 대장도감에서 새김, 해인사 보관
직지심체요절 우왕 3년(1377)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 활자로 인쇄
무구정광대다라니경 통일 신라 불국사 삼층 석탑에서 나온 목판 인쇄물
  1. ↑ 1.0 1.1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2. ↑ 2.0 2.1 2.2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