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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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은 고려 고종 때 몽골의 침입을 부처의 힘으로 물리치려는 뜻에서 대장도감을 두고 새긴 대장경 목판으로, 경판이 8만 장을 넘어 이렇게 부르며 지금 합천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다.
- 기간 - 『고려사』를 따라 흔히 1236년부터 1251년까지 16년 동안 새겼다고 한다. 그런데 경판 끝에 새긴 간행 기록을 조사해 보면 실제 판각은 1237년(고종 24)에 시작해 1248년(고종 35) 『대장목록』을 끝으로 마쳤다. 그래서 16년은 준비 기간까지 합친 것으로 본다.[1] 국가유산청도 조성 시기를 1237~1248년으로 적었다.[2]
- 새긴 곳 - 대장도감 아래 분사대장도감을 경상도 남해에 두고 이곳에서 나무를 다듬고 판을 새겼다. 강화 선원사에서 새겼다는 설이 오래 퍼져 있었으나, 선원사는 판각이 거의 끝난 1245년에 지어졌으므로 지금은 남해에서 새긴 것으로 본다.
- 교정 - 개태사 승통 수기가 북송의 관판 대장경, 거란 대장경, 초조대장경을 서로 맞대어 틀린 글자를 바로잡았다. 이 때문에 내용이 가장 정확한 대장경으로 평가되며, 지금은 전하지 않는 북송판·거란판의 내용을 알려 주는 자료이기도 하다.[2]
- 규모 - 1,496종의 경전을 담았다. 권수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6,561권, 국가유산청이 6,568권으로 적었다. 경판 수도 고려 때 새긴 것을 7만 8,500여 장으로 보는 설명과, 일제 강점기 조사에서 조선 시대에 다시 새긴 판까지 합쳐 8만 1,258장으로 센 기록이 함께 전한다.
경판은 처음 강화도 성 서문 밖의 대장경판당에 두었다. 1251년(고종 38) 고종이 이곳에 가서 완성을 축하했다. 이후 강화 선원사를 거쳐 1398년(태조 7) 합천 해인사로 옮겨졌고, 해인사 장경판전에 보관되어 있다. 조선 초에는 일본이 거듭 인쇄본을 청해 왜구에게 잡혀간 사람을 돌려받는 대가로 주기도 했다. 대장경판은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고,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되었다. 경판을 보관하는 장경판전은 1995년 세계 문화유산에 올랐다.[2]
- ↑ 1.0 1.1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 ↑ 2.0 2.1 2.2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