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우명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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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명 그릇(壺杅銘-)은 1946년 경주 노서동 호우총에서 나온 고구려의 청동 그릇으로, 바닥에 '을묘년 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 호우십'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5세기 고구려와 신라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 준다.

정식 이름은 경주 호우총 출토 청동 '광개토대왕'명 호우이며 보물로 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높이 19.4cm, 몸통 지름 24cm 정도의 뚜껑 달린 그릇이다. 1946년 광복 뒤 우리 손으로 처음 한 고분 발굴인 경주 노서동 140호분 조사에서 나왔고, 이 그릇 때문에 무덤 이름이 호우총이 되었다.[1]
그릇 바닥 바깥에 4자씩 4줄, 모두 16자를 돋을새김했다.
- 乙卯年 國罡上廣開土地好太王 壺杅十 - '을묘년에 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광개토 대왕)을 기려 만든 호우 열(번째)'로 읽는다. '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은 광개토 대왕의 시호이다.
- 을묘년 - 광개토 대왕이 죽은 지 3년 뒤, 장례를 치른 다음 해인 415년(장수왕 3)으로 본다.
- 서체 - 광개토 대왕릉비의 글씨와 비슷하다. 글자 위의 '井'자 모양 기호는 나쁜 기운을 막는 뜻으로 풀이한다.
- 십(十) - 열 개를 만들었다는 뜻, 여백을 메운 글자, 길한 뜻의 글자 등 해석이 갈린다.[1]
- 고구려에서 만든 그릇이 신라의 수도 경주의 무덤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400년 광개토 대왕이 군대를 보내 신라에 침입한 왜를 물리친 뒤 신라가 고구려의 영향 아래 있었음을 보여 주는 대표 유물이다.
- 국립중앙박물관은 광개토 대왕 추모 행사에 참석한 신라 사신이 이 그릇을 받아 온 것으로 추정한다. 이 그릇으로 고구려에서 이런 모양의 그릇을 '호우'라 불렀음도 알 수 있다.[2] 다만 함께 묻힌 신라 토기로 보아 무덤은 그릇이 만들어진 뒤 한참 지난 6세기 초에 만들어졌다고 보는 견해가 있어, 그릇이 어떤 경로로 신라 무덤에 들어갔는지는 더 논의가 필요하다.
고려의 문화유산을 고를 때 섞여 나오는 삼국 시대 유물이다.
| 문화유산 | 나라·시대 |
|---|---|
| 호우명 그릇 | 고구려에서 만들어 신라 무덤에 묻힘(5세기) |
|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 석탑(송의 영향을 받은 다각 다층탑) | 고려 (→ 한국의 석탑) |
| 청자 상감 모란문 표주박 모양 주전자 | 고려 (→ 고려청자) |
| 수월관음도 | 고려 후기 |
| 논산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 | 고려 전기 |
| 신라 금관 | 신라 |
- ↑ 1.0 1.1 5세기 전반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 사료로 본 한국사,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
- ↑ 호우총 청동그릇, 국립중앙박물관,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