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벌 전투
IT 위키
더 많은 작업
황산벌 전투(黃山벌 戰鬪)는 660년(태종 무열왕 7, 의자왕 20) 7월 백제의 계백이 이끈 결사대 5,000명이 황산벌(지금의 충청남도 논산 연산 일대)에서 김유신이 이끈 신라군 5만 명을 막다가 패한 싸움으로, 이 패배로 백제는 곧 멸망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따르면 7월 9일 김유신 등이 황산벌로 나아가자 계백이 먼저 험한 곳에 의지해 세 군데에 진을 치고 기다렸다. 신라군은 세 길로 나누어 네 번 싸웠으나 모두 불리해 병사들의 힘이 다했다.[2]
- 반굴 - 장군 김흠순(흠춘)이 아들 반굴에게 충과 효를 함께 이루라고 하자, 반굴이 적진에 뛰어들어 싸우다 죽었다.
- 관창 - 좌장군 품일이 열여섯 살 아들 관창을 내보냈다. 계백은 사로잡은 관창의 어림과 용기를 아껴 돌려보냈으나, 관창이 다시 뛰어들자 목을 베어 말안장에 매달아 보냈다.
- 결과 - 이를 본 신라군이 죽기를 각오하고 나아가 백제군을 크게 깨뜨렸다. 계백은 전사하고 좌평 충상·달솔 상영 등 20여 명이 사로잡혔다.[2]
계백은 싸움에 나서기 전 "처자가 적국의 노비가 되어 욕을 보느니 죽는 것이 낫다"며 가족을 먼저 죽였다고 전한다. 계백의 이름은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堦伯', 열전에 '階伯'으로 적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