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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金庾信, 595~673)은 금관가야 왕족의 후손인 신라의 장군으로, 김춘추(태종 무열왕)와 손잡고 백제·고구려 정벌을 이끌어 신라의 삼국 통일에 중심 역할을 했다.

532년 신라에 항복한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 김구해(구형왕)의 증손이다. 할아버지 김무력은 554년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 성왕을 죽인 장수였고, 아버지는 김서현이다. 신라는 가야 왕족을 진골로 대우했으나 신라 전통 귀족에게는 견제를 받았다. 김유신은 누이 문희를 김춘추와 혼인시켜 두 집안이 손을 잡았고, 이 결합이 신라 중대 왕실의 바탕이 되었다.[1]

  • 화랑 - 15세에 화랑이 되었고, 그를 따르던 무리를 용화향도라 했다.
  • 낭비성 전투(629) - 진평왕 때 고구려 낭비성 공격에서 앞장서 승리를 이끌며 이름을 알렸다.
  • 백제 방어(642~) - 선덕 여왕 때 대야성이 함락되자 압량주(지금의 경산) 군주가 되어 백제의 공격을 막았다.
  • 비담·염종의 난 진압(647) - 상대등 비담과 염종이 "여왕은 나라를 잘 다스리지 못한다"며 일으킨 반란을 김춘추와 함께 진압하고 진덕 여왕을 세웠다.
  • 김춘추 즉위(654) - 진덕 여왕이 죽은 뒤 김춘추를 왕(태종 무열왕)으로 세우는 데 힘썼다.
  • 황산벌 전투(660) - 그해 정월 귀족 회의의 장인 상대등이 되었고, 신라군 5만을 이끌고 황산벌에서 계백의 결사대를 물리쳐 백제를 멸망시켰다.
  • 고구려 정벌(668) - 문무왕 때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 최고 관등보다 높은 태대각간(태대서발한)을 받았다.
  • 죽음과 추봉 - 나당 전쟁 중인 673년 세상을 떠났다. 835년 흥덕왕이 흥무대왕으로 높여 왕의 대우를 했다.
  • 문명왕후 - 누이 문희. 김춘추의 왕비이며 문무왕의 어머니이다.
  • 원술 - 아들. 672년 석문 전투에서 패하고 살아 돌아와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했으나, 675년 매소성 싸움에서 공을 세웠다.
  • 김암 - 손자. 병법과 천문에 밝았다.
  • 『삼국사기』 열전 - 열전 10권 가운데 3권이 김유신 전기로, 개인으로는 가장 길다. 현손 김장청이 쓴 『김유신행록』을 바탕으로 했다.
  • 경주 김유신 묘 - 경주 송화산 기슭에 있으며, 둘레돌에 십이지신상을 새겼다.

통일기 신라 인물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활동 인물
황산벌에서 계백을 물리침, 흥무대왕 추봉 김유신
고구려·당에 가서 군사를 청함, 진골 첫 왕 김춘추 (→ 태종 무열왕)
황산벌에서 결사대 5천으로 항전 계백(백제)
세속 5계, 걸사표 원광
당과 주고받는 외교 문서 작성 강수
김흠돌의 난 진압, 국학 설립 신문왕
  1. ↑ 김유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