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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사단(興士團, Young Korean Academy)은 1913년 5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안창호가 주도해 8도 대표 25명을 발기인으로 세운 민족 운동 단체로, 인격 수양과 실력 양성을 통해 독립의 기초를 닦으려 했다.

안창호는 신민회 시절인 1909년 국내에서 청년 학우회를 조직해 청년의 인격 수련을 이끌었는데, 흥사단은 이 청년 학우회를 잇는 단체이다. 1910년 국권 피탈 뒤 망명한 안창호는 미주 한인 사회의 중심지인 샌프란시스코에서 1913년 5월 흥사단을 창립했다. 발기인은 조선 8도를 대표하는 25명이었다. '흥사'는 문사와 무사를 아울러 참된 인재를 일으킨다는 뜻을 담았다.[1][2]

  • 4대 정신 - 무실(참되고 실속 있게 힘씀)·역행(힘써 행함)·충의·용감을 정신으로 삼고, 덕·체·지 3육을 강조했다.
  • 미주 활동 - 미주의 대한인 국민회와 함께 해외 한인 사회를 이끌었고, 단우들은 독립운동 자금을 대었다.
  • 원동 위원부(1920) -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진 뒤 상하이에 흥사단 원동 위원부를 두어 중국 지역 청년을 모았다.
  • 국내 조직 - 1922년 서울의 수양 동맹회, 1923년 평양의 동우 구락부가 만들어졌고, 두 단체는 1925년 수양 동우회로 합쳐졌다가 1929년 동우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1926년 잡지 『동광』을 펴냈다.[2]
  • 동우회 사건(1937) - 일제가 동우회 회원들을 대거 붙잡아 국내 조직이 해산되었다. 안창호도 이때 체포되었다가 병보석 중 1938년 3월 숨졌다.

광복 뒤 본부를 국내로 옮겼고, 1963년 7월 국내 조직을 다시 일으켜 청소년 수련과 시민운동을 펼쳤다. 1969년 사단 법인이 되었다.[1]

미주·국외 단체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단체 창립 성격
흥사단 1913, 샌프란시스코 안창호, 인격 수양·실력 양성
대한인 국민회 1910, 미국 미주·하와이 한인 단체의 통합 조직
대조선 국민군단 1914, 하와이 박용만, 군사 훈련
권업회 1911,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의 자치·독립운동 단체
신민회 1907, 국내 안창호·양기탁의 비밀 결사, 청년 학우회 조직
  1. ↑ 1.0 1.1 흥사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21 확인.
  2. ↑ 2.0 2.1 흥사단 연혁(1945년 해방 이전), 흥사단, 2026-10-21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