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개조 정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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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개조 정강(十四個條 政綱, 1884)은 갑신정변을 일으킨 급진 개화파가 새 정부의 개혁 방향으로 내건 정령 가운데 김옥균의 『갑신일록』에 14개 조항으로 전하는 개혁안이다.
1884년 10월 17일(양력 12월 4일)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에서 정변을 일으킨 김옥균·박영효·홍영식·서광범 등은 이튿날 새 내각을 꾸린 뒤 개혁 정령을 논의했고, 10월 19일 오전 국왕의 전교 형식으로 이를 반포해 서울 곳곳에 내걸었다. 정령은 80여 조목에 이르렀다는 회고도 있으나, 오늘날에는 김옥균이 일본 망명 중에 쓴 『갑신일록』에 '간략히 적는다'며 남긴 14개 조항만 전한다.[1][2]
정변이 청군의 개입으로 사흘 만에 무너지면서 정강은 시행되지 못했다. 그러나 청에 대한 사대 관계를 끊고 신분제와 재정·군사 제도를 고치려 한 최초의 근대 정치 개혁안으로 평가되며, 문벌 폐지와 재정 일원화 같은 내용은 10년 뒤 갑오개혁에서 상당 부분 실현되었다.
- 외교 - 청에 잡혀간 흥선 대원군을 곧 돌아오게 하고, 청에 바치던 조공의 허례를 폐지한다(1조).
- 사회 - 문벌을 폐지해 인민 평등의 권리를 세우고, 능력에 따라 관리를 뽑는다(2조).
- 경제·재정 - 지조법(토지세 제도)을 고친다(3조). 각 도의 환곡을 영구히 받지 않는다(6조). 보부상 조직인 혜상공국을 없앤다(9조). 나라의 재정은 모두 호조가 맡고 다른 재정 관청은 없앤다(12조).
- 정치 - 내시부(4조)와 규장각(7조)을 없애고, 나라를 병들게 한 탐관오리를 벌한다(5조). 유배·금고된 사람을 풀어 준다(10조). 대신과 참찬이 의정소에서 회의해 정령을 정하고(13조), 의정부와 6조 외의 불필요한 관청을 없앤다(14조).
- 치안·군사 - 순사를 두어 도둑을 막고(8조), 4영을 하나로 합쳐 근위대를 둔다(11조).
13조·14조는 국왕을 빼고 대신들의 회의에서 국정을 정하도록 한 것이어서, 왕권을 제한하고 내각 중심의 입헌 군주제를 지향한 것으로 본다.[2]
- ↑ 갑신정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 ↑ 2.0 2.1 갑신정변의 정령 14개조, 사료로 본 한국사,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