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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남북 공동 성명(七四南北共同聲明, 1972)은 1972년 7월 4일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발표된 분단 이후 남북한 당국 간 최초의 합의 문서로, 자주·평화·민족적 대단결의 통일 3대 원칙을 밝혔다.

1969년 닉슨 독트린 이후 미국과 중국이 가까워지는 등 냉전의 긴장이 풀리자(데탕트) 남북도 대화에 나섰다. 1971년 8월 대한 적십자사가 이산가족 찾기를 위한 남북 적십자 회담을 제의했고, 회담 연락을 맡은 인사들의 비밀 접촉이 정치 대화로 이어졌다. 1972년 5월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이 비밀리에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을 만났고, 북한의 제2부수상 박성철이 서울을 다녀간 뒤 공동 성명이 나왔다. 성명은 이후락과 김영주(북한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다.[1]

  • 통일 3대 원칙
    • 자주 -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주적으로 해결한다.
    • 평화 - 통일은 무력이 아닌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한다.
    • 민족적 대단결 - 사상·이념·제도의 차이를 넘어 하나의 민족으로서 대단결을 도모한다.
  • 서로 중상·비방과 무장 도발을 하지 않고 다방면의 교류를 실시하며, 적십자 회담 성사에 협력한다.
  • 서울과 평양 사이에 상설 직통 전화를 놓는다.
  • 합의 사항을 추진하고 통일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남북 조절 위원회를 구성·운영한다.[2]
  • 남북 조절 위원회 회의가 1972~1973년 몇 차례 열렸으나, 1973년 8월 김대중 납치 사건을 구실로 북한이 대화 중단을 선언했다.
  • 남쪽은 1972년 10월 유신 헌법, 북쪽은 같은 해 12월 사회주의 헌법을 만들어 각자 독재 체제를 강화하는 데 대화 분위기를 이용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 그럼에도 통일 3대 원칙은 이후 남북 기본 합의서(1991)와 6·15 남북 공동 선언(2000)에서 거듭 확인되었다.

다른 남북 합의와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합의 정부 핵심
7.4 남북 공동 성명(1972) 박정희 정부 자주·평화·민족적 대단결, 남북 조절 위원회
이산가족 고향 방문단 교환(1985) 전두환 정부 분단 뒤 첫 이산가족 상봉
남북 기본 합의서·한반도 비핵화 공동 선언(1991) 노태우 정부 화해·불가침·교류 협력, 남북 관계를 '잠정적 특수 관계'로 규정
6·15 남북 공동 선언(2000) 김대중 정부 첫 남북 정상 회담, 연합제·낮은 단계 연방제의 공통성 인정
10·4 남북 정상 선언(2007) 노무현 정부 제2차 남북 정상 회담, 서해 평화 협력 특별 지대
  1. ↑ 7·4남북공동성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남북조절위원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