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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서당 10정(九誓幢十停)은 통일 신라가 갖춘 군사 조직으로, 수도를 지키는 중앙군 9서당과 지방 9주에 배치한 지방군 10정을 함께 이르는 말이다.

삼국 통일로 영토와 백성이 크게 늘자 신라는 군사 조직을 새로 짰다. 중앙에는 옷깃(금, 衿)의 색으로 부대를 구별한 9개의 서당을 두고, 지방에는 9주마다 1정씩, 국경 요지인 한산주에만 2정을 두어 모두 10정을 배치했다. 9서당은 대부분 신문왕 때 갖추어졌고 693년(효소왕 2) 비금서당이 생기면서 완성되었다.[1]

『삼국사기』 직관지는 9서당을 다음 순서로 적었다.[2]

  • 신라인 - 녹금서당(583년 서당으로 설치, 613년 개칭), 자금서당(625년 낭당 설치, 677년 개칭), 비금서당(672년 장창당 설치, 693년 개칭)
  • 백제인 - 백금서당(672, 백제민), 청금서당(687, 백제 잔민)
  • 고구려인 - 황금서당(683, 고구려민)
  • 보덕국인 - 벽금서당·적금서당(686, 보덕성민)
  • 말갈인 - 흑금서당(683, 말갈국민)

9개 부대 가운데 6개를 옛 백제·고구려·보덕국 사람과 말갈인으로 꾸렸다. 정복한 사람들을 중앙군에 넣어 하나로 묶으려는 뜻으로 보지만, 청금서당의 '잔민'처럼 반발 세력을 감시하려는 뜻이 섞였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1]

10정은 음리화정(상주)·고량부리정(웅주)·거사물정(전주)·삼량화정(양주)·소삼정(강주)·미다부리정(무주)·남천정·골내근정(한주)·벌력천정(삭주)·이화혜정(명주)이다. 『삼국사기』는 모두 544년(진흥왕 5)에 두었다고 적었으나[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9주 5소경이 갖추어진 677~687년 무렵에 실제로 설치된 것으로 본다.[4]

여러 나라의 군사 제도와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군사 조직 나라
중앙군 9서당, 지방군 10정 통일 신라
수도를 지키는 10위 발해
중앙군 2군 6위, 지방군 주현군·주진군 고려 (→ 고려의 군사 제도)
신분과 관계없이 일으킨 별무반(신기군·신보군·항마군) 고려 숙종 (→ 윤관)
훈련도감 등 5군영 조선 후기 (→ 5군영)
  1. ↑ 1.0 1.1 구서당,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2. ↑ 『삼국사기』 권40 잡지 직관 하 무관, 9서당,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
  3. ↑ 『삼국사기』 권40 잡지 직관 하 무관, 10정,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
  4. ↑ 십정,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