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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근(權近, 1352~1409)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자 성리학자로, 호는 양촌이며, 성리학의 기본 원리를 그림으로 풀이한 『입학도설』을 지어 조선 초 성리학과 관학의 기틀을 놓았다.

안동 사람으로, 고려의 정승 권부의 증손이다. 1369년(공민왕 18) 18세로 과거에 급제해 성균관 직강·예문관 응교 등을 지냈다. 공민왕이 죽은 뒤 원의 사신을 맞이하려 하자 정몽주·정도전 등과 함께 도당에 글을 올려 반대했다.[1] 이색을 스승으로 모시고 정몽주·이숭인·정도전 등과 어울리며 성리학을 깊이 공부했다. 고려 말에는 이숭인을 변호하다 유배되고 윤이·이초의 옥사에 걸려 청주 옥에 갇히기도 했으나, 조선이 세워지자 1393년(태조 2) 태조의 부름에 응해 새 왕조에 참여했다.[2]

  • 대명 외교 - 1396년 명이 조선의 외교 문서 표현을 문제 삼은 표전 문제가 일어나자 명에 가서 이를 풀었다. 명 태조의 명으로 응제시 24편을 지어 문명을 떨쳤다.
  • 사병 혁파 - 정종 때 대사헌으로 있으면서 왕족·공신이 거느린 사병을 없애자고 건의해 실현시켰다.
  • 관학 정비 - 태종 때 좌명공신에 올라 길창군에 봉해졌다. 1402년 지공거로 과거를 주관했고, 유학제조를 겸하며 「권학사목」을 올려 성균관과 향교 교육을 다듬었다. 하륜 등과 『동국사략』을 편찬했다.[2]
  • 『입학도설』 - 성리학을 처음 배우는 이들을 위해 『대학』·『중용』의 요지와 천인심성의 이치를 그림으로 나타내고 풀이한 책이다. 뒤에 이황 등 여러 학자에게 영향을 주었다.
  • 『오경천견록』 - 다섯 경전을 성리학의 입장에서 풀이했다. 이 가운데 『예기천견록』은 태종이 관에서 비용을 대어 활자로 간행하게 하고 경연에서 강의하게 했다.
  • 주석과 문집 - 정도전의 불교 비판서 『불씨잡변』에 주석을 달았다. 문집으로 『양촌집』 40권이 전한다. 시호는 문충이다.[2]

고려 말 조선 초 성리학자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활동·저술 인물
『입학도설』, 『오경천견록』, 사병 혁파 건의 권근
『불씨잡변』으로 불교 비판, 『조선경국전』 정도전
성균관 대사성으로 정몽주 등을 학관으로 천거 이색
만권당에서 원 학자들과 교유, 『역옹패설』 이제현
9재 학당을 세운 해동공자(고려 전기) 최충
  1. ↑ 『태종실록』 17권, 태종 9년 2월 14일, 길창군 권근의 졸기, 조선왕조실록,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
  2. ↑ 2.0 2.1 2.2 권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