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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과전(祿科田)은 고려 후기 몽골과의 전쟁으로 나라 창고가 비어 관리의 녹봉을 제대로 줄 수 없게 되자, 녹봉을 보충하려고 경기 8현의 땅을 관리에게 나누어 준 토지 제도이다.

『고려사』 식화지에 따르면 원종 12년(1271) 2월 도병마사가 "근래 전쟁 때문에 창고가 비어 백관의 녹봉을 주지 못하니, 경기 8현에서 품계에 따라 녹과전을 지급하자"고 건의했다. 왕족과 측근들이 이미 기름진 땅을 차지하고 있어 반대가 거셌으나, 우승선 허공 등이 거듭 주장해 왕이 마지못해 따랐다.[1] 이듬해인 원종 13년(1272) 정월에 문무 관리에게 경기의 땅을 차등 있게 나누어 주었다.[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강화도에 도읍하던 1257년(고종 44)에 '토지를 나누어 녹봉을 대신한다(분전대록)'는 원칙이 먼저 마련되었고, 개경 환도 뒤 1272년에 시행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녹과전의 시작을 1271년(건의)으로 적기도 하고 1272년(지급)으로 적기도 한다.[3]

  • 지급 지역 - 경기 8현(장단·송림·임진·토산·임강·적성·파평·마전으로 본다)의 땅 가운데 양반의 조업전을 뺀 땅을 거두어 나누어 주었다.
  • 성격 - 땅 자체가 아니라 조세를 거둘 권리(수조권)를 준 것으로 보며, 무너진 전시과를 대신해 관리의 경제 기반이 되었다.
  • 문란 - 녹봉이 정상으로 돌아온 뒤에도 남았으나, 권세가들이 빼앗아 겸병하는 일이 잦아 충렬왕·충목왕 때 여러 번 다시 나누어 주었다(→ 원 간섭기).[3]
  • 과전법으로 - 고려 말 신진 사대부가 사전을 정리하고 경기의 땅으로 관리에게 수조권을 주는 과전법(1391)을 만들었다. 관리에게 주는 땅을 경기로 한정했다는 점에서 녹과전과 닮았다.

다른 토지 제도와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제도 시기 내용
관료전 지급, 녹읍 폐지 통일 신라 신문왕 (→ 녹읍)
역분전 고려 태조 후삼국 통일 공신에게 공로와 인품에 따라 지급 (→ 고려 태조)
전시과 고려 경종~문종 관직·직역에 따라 전지와 시지의 수조권 지급 (→ 전시과)
녹과전 고려 원종 녹봉을 보충하려고 경기 8현의 땅을 지급
과전법 고려 공양왕 경기의 땅으로 전·현직 관리에게 지급 (→ 과전법)
직전법 조선 세조 현직 관리에게만 지급 (→ 조선 전기의 토지 제도)
  1. ↑ 『고려사』 권78 식화지1 전제 녹과전, 도병마사가 녹과전의 지급을 건의하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21 확인.
  2. ↑ 『고려사』 권78 식화지1 전제 녹과전, 문무관에게 경기의 전지를 지급할 것을 논의하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21 확인.
  3. ↑ 3.0 3.1 녹과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21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