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춘
더 많은 작업
박성춘(朴晟春, ?~1933)은 대한 제국 시기의 백정 출신 개신교인으로, 백정 차별 철폐를 청원했고 1898년 독립 협회가 연 관민 공동회에서 백정으로서 연설해 관리와 백성이 마음을 합치자고 호소했다.
백정의 아들로 태어나 백정으로 살았다. 서울 곤당골의 예수교 학당을 연 선교사 무어를 통해 기독교를 받아들였고, 여기서 '만민 평등'의 뜻을 익혀 백정 해방에 나섰다.[1]
1898년 10월 28일부터 11월 3일까지 독립 협회는 정부 대신들과 여러 민간 단체를 종로에 모아 관민 공동회를 열었다. 박성춘은 이 자리에서 "이 사람은 대한에서 가장 천한 사람이고 무식하지만 임금께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뜻은 대강 안다"며, "천막을 장대 하나로 받치면 힘이 모자라지만 여러 장대를 합치면 튼튼하다. 관리와 백성이 마음을 합하자"고 연설해 박수를 받았다. 이어 모인 사람들은 헌의 6조를 결의해 고종에게 올렸다. 이 연설은 독립 협회에 참여한 정교의 『대한계년사』에 전한다. 연설한 날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첫날인 10월 28일, 『사료로 본 한국사』는 둘째 날인 10월 29일로 적는다.[2][1]
천대받던 백정이 많은 사람 앞에서 정치적 의견을 밝히고 존중받았다는 점에서, 이 연설은 만민 공동회에서 시작된 민의의 정치 문화가 정점에 이르렀음을 보여 준다.[2]
곤당골 교회는 1905년 인사동으로 옮겨 승동 교회가 되었고, 박성춘은 1911년 이 교회의 장로가 되었다. 아들 박서양은 세브란스 의학교 제1회 졸업생으로 모교 교수를 지내다 1918년 만주로 옮겨 병원을 열었고, 박성춘도 이때 함께 서울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