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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별초의 항쟁에서 넘어옴)

삼별초(三別抄)는 고려 무신 집권기에 최우가 만든 야별초에서 나온 좌별초·우별초와 몽골에서 탈출해 온 사람들로 꾸린 신의군을 합친 부대로, 몽골과의 전쟁에서 활약하고 1270년 개경 환도에 반대해 진도와 제주도에서 1273년까지 항쟁했다.

최우가 집권한 뒤 전국에 도적(실제로는 농민 봉기)이 일어나자 용사를 뽑아 밤에 순찰하게 한 것이 야별초이다. 인원이 늘어 좌별초와 우별초로 나뉘었고, 몽골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도망쳐 온 사람들로 신의군을 만들어 이 셋을 삼별초라 불렀다. 야별초 기록은 1232년부터, 신의군과 좌·우별초 기록은 1250년대 후반부터 보인다.[1]

  • 임무 - 도둑을 잡는 경찰, 죄인을 가두고 심문하는 형옥, 그리고 전투를 함께 맡았다. 강화도 수도를 지키고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본토로 나가 싸웠다.
  • 대몽 항전 - 정규군이 무너진 1250년대 이후 몽골군과 싸운 주력이 되었다. 신의군은 포로였던 사람들이라 몽골에 대한 반감이 특히 컸다.
  • 사병인가 공병인가 - 국가 재정으로 녹봉을 받았지만 권력자가 자기 무력으로 썼다. 김준이 최의를 죽이고(1258), 임연이 김준을, 송송례가 임유무를 제거할 때 모두 삼별초의 힘을 빌렸다. 무신 집권자의 순수한 사병인 도방·마별초와는 구별된다.

삼별초 항쟁(1270~1273)

편집 원본 편집
  • 봉기 - 1270년(원종 11) 임유무가 제거되어 무신 정권이 끝나자 원종은 몽골의 뜻에 따라 개경으로 돌아가고 삼별초 해산을 명하며 명부를 거두었다. 이에 장군 배중손이 삼별초를 모아 왕족 승화후 온을 왕으로 세우고 봉기했다.[2]
  • 진도 - 배를 몰아 진도로 옮겨 용장성을 쌓고 스스로 고려의 정통 정부라 했다. 경상·전라 해안과 제주도까지 손에 넣어 조운을 끊었다. 1271년 김방경과 홍다구·흔도가 이끈 여몽 연합군에 진도가 함락되고 배중손이 죽었다.
  • 제주도 - 남은 무리는 김통정의 지휘로 제주도로 옮겨 항파두리성을 거점으로 해안을 습격했으나, 1273년(원종 14) 여몽 연합군에 진압되었다. 몽골은 그 뒤 제주에 탐라총관부를 두었다.
  • 의의 - 몽골에 기대어 권력을 지키려 한 지배층에 맞선 항쟁으로, 밀성·청도 농민과 개경 관노 등이 호응했다.

다른 군사 조직과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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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조직
좌별초·우별초·신의군, 진도·제주도에서 항쟁 삼별초
경대승·최충헌이 둔 무신 집권자의 사병 집단 도방 (→ 최씨 무신 정권)
응양군·용호군으로 이루어진 국왕 친위 부대 2군 (→ 고려의 군사 제도)
신기군·신보군·항마군으로 여진 정벌 별무반 (→ 윤관)
포수·살수·사수의 삼수병 훈련도감(조선 후기)
  1. ↑ 삼별초,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삼별초항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