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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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 운동(새마을運動)은 박정희 정부가 1970년 농촌 근대화를 내걸고 시작해 '근면·자조·협동'을 기본 정신으로 공장·도시·직장까지 넓힌 범국민적 지역 사회 개발 운동이다.

1960년대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으로 공업은 빠르게 성장했으나, 농촌 인구가 도시로 빠져나가고 도시와 농촌의 소득 격차가 벌어졌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0년 4월 22일 전국 지방 장관 회의에서 향약·계·두레·품앗이 같은 전통 협동 풍습을 살린 마을 가꾸기를 제안했고, 정부는 이를 국가 정책 사업으로 삼았다. '잘 살아 보세'라는 구호와 새마을 노래가 퍼졌고, 사업은 내무부의 행정 조직을 통해 위에서 아래로 빠르게 추진되었다.[1]
- 새마을 가꾸기(1970) - 전국 33,267개 마을에 시멘트 336포대씩을 나누어 주었다. 이듬해 성과가 좋은 마을 16,600곳을 골라 시멘트 500포대와 철근 1톤을 더 주어, 마을을 등급으로 나누고 차등 지원하는 방식이 자리 잡았다.
- 농촌 환경 개선 - 초가지붕을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꾸고, 돌담을 블록 담장으로 고치고, 마을 안길과 농로를 넓혔다. 퇴비 증산과 농기구 개량, 소득 증대 사업도 함께 벌였다.
- 전국 운동으로 확대 - 1973년 내무부와 대통령 비서실에 새마을 담당관실을 두었다. 1974년부터 공장 새마을 운동, 1976년부터 도시 새마을 운동이 대대적으로 펼쳐져 의식 개혁 운동으로 넓어졌다.[1]
- 1980년 이후 - 제5공화국 출범 뒤 새마을 운동 조직 육성법에 따라 새마을 운동 중앙 본부가 세워졌다.[1]
| 사실 | 시기 |
|---|---|
| 초가지붕 개량, 마을 안길 확장, '근면·자조·협동' | 새마을 운동(1970년대, 박정희 정부) |
| 백화점·라디오 방송의 등장, 모던 걸, 경평 축구 대회 | 일제 강점기 (→ 일제 강점기의 생활 문화) |
| 몸뻬 착용 강요 등 전시 체제의 의생활 | 일제 강점기 말 (→ 민족 말살 통치) |
| 농촌 계몽과 문맹 퇴치를 내건 학생 운동(1931~1934) | 일제 강점기 (→ 브나로드 운동) |
| 일제가 농가 갱생 계획을 내건 관제 운동(1932~1940) | 일제 강점기 (→ 농촌 진흥 운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