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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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저(沃沮)는 지금의 함경도 동해안 일대에 있던 초기 국가로, 왕 없이 읍군·삼로 같은 군장이 각 읍락을 다스렸으며 민며느리제와 가족 공동 무덤의 풍속으로 알려져 있다.
- 읍군·삼로 - 여러 읍락이 하나로 뭉치지 못해 큰 군장이 없었고, 읍락마다 우두머리가 자치적으로 다스렸다. 동예도 같았다.
- 고구려에 공납 - 고구려는 읍락의 우두머리를 사자로 삼아 간접 지배하고, 고구려의 대가를 보내 공납을 거두었다. 옥저는 베·물고기·소금 같은 해산물을 바쳤고, 미녀를 보내기도 했다.
- 소와 말이 적어 걸어서 싸우는 데 능했다.
- 민며느리제 - 여자아이가 열 살 무렵 되면 양가가 혼인을 약속하고, 신랑 집에서 데려다 키웠다. 다 자라면 친정으로 돌려보내고, 친정에서 요구한 돈을 신랑 집이 치른 뒤에야 다시 데려와 혼인했다. 『삼국지』가 『위략』을 인용해 전한 풍속이다.[3] 고구려의 서옥제와 반대 방향처럼 보이지만, 혼인으로 줄어드는 노동력을 재물로 보상한다는 점은 같다.
- 가족 공동 무덤 - 사람이 죽으면 흙이나 풀로 덮어 임시로 묻었다가, 살이 썩은 뒤 뼈만 추려 길이 10여 장(丈)에 이르는 큰 나무 덧널에 넣었다. 한 집안 사람은 모두 같은 덧널을 썼고, 죽은 사람의 모습을 나무로 깎아 곁에 두었다. 덧널 입구에는 쌀을 담은 그릇을 매달았다.[2]
- ↑ 東沃沮는 고구려 蓋馬大山의 동쪽에 있는데, 『삼국지』 권30 위서 동이전 동옥저, 중국정사 조선전, 한국사데이터베이스, 2026-10-19 확인.
- ↑ 2.0 2.1 옥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 ↑ 옥저의 민며느리 풍속, 『삼국지』 권30 위서 동이전, 사료로 본 한국사,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