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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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三韓)은 삼국 시대 이전 한반도 중남부에 있던 마한·진한·변한의 세 소국 연맹을 함께 이르는 말로,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벼농사를 지었으며 정치 지배자와 별도로 제사장인 천군이 신성 지역인 소도를 다스렸다.
삼한 사회를 전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한(韓)조이다. 이에 따르면 마한은 54개, 진한과 변한은 각각 12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졌다. 소국은 큰 것이 1만여 가(家), 작은 것이 600~700가 정도였다. 각 소국은 중심 읍락인 국읍과 여러 읍락으로 이루어졌고, 큰 소국의 지배자는 신지, 작은 소국의 지배자는 읍차 등으로 불렸다.[1]
마한은 지금의 경기·충청·전라 지역에 걸쳐 있었고, 그 가운데 목지국의 지배자가 진왕으로 불리며 삼한 전체를 이끌었다. 진한은 대구·경주 일대, 변한은 김해·마산 일대에 자리 잡았다. 뒤에 한강 유역의 백제국이 마한을 통합해 백제로, 진한의 사로국이 신라로 자랐고, 변한의 구야국을 중심으로 가야 연맹이 일어났다.[2]
- 천군 - 국읍마다 한 사람을 뽑아 하늘에 지내는 제사를 맡게 했는데, 이를 천군이라 했다. 정치를 맡은 신지·읍차와 제사를 맡은 천군이 나뉘어 있었으므로 제정 분리 사회로 본다.
- 소도 - 여러 소국에는 별읍이 있어 이를 소도라 했다.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매달아 귀신을 섬겼으며, 죄를 지은 사람이 그 안으로 도망쳐 들어가도 잡아가지 못했다.[3] 오늘날 마을 어귀에 세우는 솟대와 이어진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 계절제 - 씨를 뿌린 뒤인 5월과 곡식을 거둔 뒤인 10월에 제사를 지내고, 여럿이 모여 밤낮으로 술 마시며 노래하고 춤추었다. 춤은 땅을 밟으며 장단을 맞추는 모습이었다.[4]
- 농경 - 땅이 기름져 벼농사를 짓고 오곡을 길렀으며, 누에를 쳐서 비단을 짰다.[1]
- 변한의 철 - 변한(변진)에서는 철이 많이 나서 낙랑·왜 등에 수출했고, 철을 화폐처럼 쓰기도 했다(→ 금관가야).[2]
- 주거 - 『삼국지』는 마한 사람들이 무덤처럼 생긴 움집에 살았다고 했고, 진변한의 집은 나무를 가로로 쌓아 지었다고 했다.[4]
- 풍습 - 진변한에서는 장례 때 큰 새의 깃털을 함께 묻어 죽은 이가 날아오르기를 빌었다. 진변한의 편두(머리를 납작하게 만드는 풍습)는 김해 예안리 고분의 머리뼈로 확인되었고, 마한 남자들은 문신을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