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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서(迂書)는 조선 영조 때 실학자 유수원이 지방관으로 있던 1730년대 무렵 문답 형식으로 쓴 국가 개혁서로, 나라가 가난한 원인을 사농공상이 제 직업에 전념하지 못하는 데서 찾고, 신분이 아닌 능력에 따른 직업적 평등과 상공업의 전문화·진흥을 주장했다.

유수원이 마흔 살 무렵인 영조 5~13년(1729~1737) 사이 지방관으로 일하며 지었다. 중국 사마광의 『우서』처럼 묻고 답하는 형식이지만 서론·본론·결론을 갖춘 짜임새 있는 글이다. 쓰일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 널리 읽혀 왕에게까지 알려졌다.[1] 1737년(영조 13) 비변사 당상 이종성은 단양 군수 유수원이 귀는 어둡지만 글을 잘하고 나라를 위한 책을 한 권 지었다고 아뢰었고, 영조는 그 『우서』를 구해 오게 했다.[2]

  • 사민불분 비판 - 나라가 허약하고 백성이 가난한 까닭은 사(士)·농·공·상이 각자의 생업에 전념하지 못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 사민일치 - 문벌과 신분에 따른 차별을 없애고, 모두가 능력과 적성에 따라 직업을 가진 평등한 국민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양반도 놀고먹지 말고 농·공·상에 종사해야 한다고 보았다.
  • 상공업 진흥 - 상인이 자본을 합쳐 큰 상점을 운영하고, 생산과 판매를 전문화하며, 상인의 지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1]

유수원은 1755년(영조 31) 나주 괘서 사건에 얽혀 처형되었고, 그 뒤 『우서』도 지은이를 밝히지 않은 채 전해졌다.

실학자의 개혁론과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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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 지은이 핵심 주장
『반계수록』 유형원 균전론, 신분에 따른 토지 재분배
『성호사설』 이익 한전론, 여섯 가지 좀(6좀)
『우서』 유수원 사농공상의 직업적 평등, 상공업 전문화
『열하일기』 박지원 수레·벽돌 이용, 청 문물 수용
『북학의』 박제가 소비 권장, 수레·선박 이용
  1. ↑ 1.0 1.1 우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28 확인.
  2. ↑ 『영조실록』 권45, 영조 13년(1737) 10월 24일 「인재를 천거하게 하다. 단양 군수 유수원이 지은 《우서》를 구하게 하다」, 한국고전종합DB, 2026-10-2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