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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熱河日記)는 박지원이 1780년(정조 4) 청 건륭제의 70세 생일을 축하하는 사신단을 따라 베이징과 열하(지금의 청더)를 다녀온 뒤 쓴 견문록으로, 청의 발달한 문물을 소개하며 수레·벽돌 등 이용후생과 상공업 진흥, 청 문물 수용을 주장한 북학의 대표 저술이다. 26권 10책이다.

박지원은 삼종형 박명원이 이끄는 진하 사절단에 개인 수행원으로 끼어 압록강을 건너 랴오양·선양을 거쳐 베이징에 갔고, 건륭제가 머물던 열하까지 다녀왔다. 돌아와 보고 들은 것을 일기와 여러 편의 글로 엮었다.[1]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이 소장한 초고본(보물)은 처음 쓸 때의 모습과 박지원·후손이 고쳐 쓴 과정을 보여 주며, 여러 곳에 전하는 필사본들의 바탕이 된 자료로 평가된다.[2]

  • 「도강록」 - 압록강에서 랴오양까지 15일의 기록으로, 성 쌓는 법과 벽돌 사용 등 이용후생에 대한 관심이 드러난다.
  • 「막북행정록」 - 베이징에서 열하까지 5일의 기록이다.
  • 「태학유관록」 - 열하의 태학에 머물며 청 학자들과 지구가 돈다는 지전설 등을 토론한 내용이다.
  • 「황도기략」 - 베이징의 문물·제도 38가지를 적었다.
  • 「일신수필」 - 수레와 배의 이용 등 실용 기술을 논했다.
  • 「관내정사」·「옥갑야화」 - 양반의 위선을 풍자한 「호질」, 상업과 북벌론의 허위를 다룬 「허생전」이 실려 있다.[1]

『열하일기』는 박제가의 『북학의』와 "한 사람 솜씨에서 나온 것 같다"는 평을 들을 만큼 북학을 강하게 주장했다. 청을 오랑캐라며 배척하던 북벌론의 분위기 속에서 청의 앞선 기술과 제도를 배워 백성의 삶을 넉넉하게 하자고 한 것이다. 한편 자유롭고 개성 있는 문체가 유행하자 정조는 바른 고문으로 돌아가자는 문체반정을 벌이며 『열하일기』의 문체를 대표적으로 문제 삼았다.

실학자의 저술과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저술 지은이 핵심 주장
『열하일기』 박지원 청 견문, 수레·벽돌 등 이용후생, 상공업 진흥
『북학의』 박제가 청 문물 수용, 소비가 생산을 자극(우물론)
『의산문답』 홍대용 지전설·무한 우주론, 중국 중심 세계관 비판
『우서』 유수원 사농공상의 직업적 평등, 상공업 전문화
『성호사설』 이익 한전론, 나라를 좀먹는 여섯 가지 폐단
  1. ↑ 1.0 1.1 열하일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28 확인.
  2. ↑ 박지원 열하일기 초고본 일괄,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2026-10-2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