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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휘(李東輝, 1873~1935)는 대한 제국 군인 출신으로 신민회와 서북 학회에서 계몽 운동을 벌였고, 1918년 한인 사회당을 세웠으며, 1919년 통합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총리를 지낸 독립운동가이다.

이동휘(1930년대)

함경남도 단천에서 태어났고 호는 성재이다. 무관 학교를 나와 강화도 진위대장(참령)을 지냈다. 국권이 기울자 군직을 떠나 강화도에 보창 학교를 세우는 등 교육 계몽 운동에 힘썼다. 국외로 망명한 뒤에는 무장 투쟁과 사회주의 운동을 함께 이끌었다. 정부는 1995년 건국 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1][2]

  • 계몽 운동 - 1906년 한북 흥학회를 만들고 1908년 서우 학회와 합쳐 서북 학회로 키웠다. 신민회 간부로 활동했고, 1911년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다.
  • 군대 해산 이후 - 1907년 한일 신협약으로 군대가 해산되자 1909년 강화도에서 의병을 일으키려다 붙잡혀 유배되었다.
  • 한인 사회당 - 북간도와 연해주로 망명해 대한 광복군 정부를 세웠고, 1918년 4월 최초의 한인 사회주의 정당인 한인 사회당을 만들었다.
  • 임시정부 국무총리 - 1919년 9월 연해주의 대한 국민 의회, 서울의 한성 정부, 상하이 임시 정부가 하나로 합쳐질 때 대통령 이승만과 함께 국무총리로 뽑혔다. 상하이 임시 정부가 처음 세워진 1919년 4월의 국무총리는 이승만이었으므로, 이동휘는 통합 임시정부의 첫 국무총리이다.[3]
  • 고려 공산당 - 한인 사회당을 고려 공산당으로 바꾸었다. 백과사전은 그 시기를 1921년으로, 독립기념관은 1920년으로 적는다. 레닌 정부에게서 받은 자금 문제와 이승만과의 갈등으로 1921년 1월 국무총리를 그만두었다.
  • 이후 연해주에서 국제 혁명 운동 희생자 후원회(모플) 활동 등을 하다가 1935년 1월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2]

임시정부의 인물과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활동 인물
한인 사회당 조직, 통합 임시정부 국무총리 이동휘
임시정부 대통령, 정읍 발언 이승만
조선 건국 동맹 조직, 좌우 합작 운동 여운형
독사신론 발표, 조선 혁명 선언 작성 신채호
헤이그 만국 평화 회의 특사 이상설·이준·이위종 (→ 헤이그 특사 사건)
  1. ↑ 이동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2. ↑ 2.0 2.1 독립운동을 이끈 항일민족운동의 선구자 이동휘, 『월간 독립기념관』, 독립기념관, 2026-10-19 확인.
  3. ↑ 대한민국임시정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