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휴
IT 위키
더 많은 작업
이승휴(李承休, 1224~1300)는 고려 원 간섭기의 문신으로, 호는 동안거사이며, 충렬왕의 실정을 비판하다 물러난 뒤 삼척에 숨어 살며 우리 역사를 단군에서 시작한 『제왕운기』를 지었다.
경산부 가리현(지금의 경상북도 성주) 사람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었고 고종 때 과거에 급제했다. 몽골의 침입이 이어지자 삼척 두타산 구동에 들어가 10여 년 동안 농사를 지으며 어머니를 봉양했다.[1]
- 출사 - 1263년(원종 4) 이장용 등에게 벼슬을 청하는 시를 보낸 뒤 이듬해 천거를 받아 경흥부 서기가 되었고, 도병마녹사로 옮겼다.
- 원 사행 - 1273년과 1274년 원에 가는 사신의 서장관으로 다녀왔다. 1274년에는 원에 있던 세자(뒤의 충렬왕)가 원종의 장례를 몽골식 옷차림으로 치를까 걱정해 고려식 상복을 입도록 권했다.
- 간쟁 - 충렬왕 때 우정언이 되어 정치의 잘잘못을 15개 조로 따졌다. 안렴사로 나가 뇌물 받은 관리 7명을 탄핵했다가 원한을 사서 동주 부사로 밀려났고, 이때부터 스스로 동안거사라 했다.
- 파직 - 1280년(충렬왕 6) 전중시사로서 감찰사 관원들과 함께 왕의 실정과 측근의 횡포를 10개 조로 간언하다가 파직되었다.[2]
- 만년 - 1298년 충선왕이 개혁 정치를 펴면서 다시 불러 사림시독 좌간의대부 등에 임명했으나, 나이를 들어 거듭 사양하다 물러났다. 1300년(충렬왕 26) 77세로 죽었다.[1]
- 『제왕운기』(1287) - 삼척 두타산에 은거하며 지었다. 상권은 중국 역사를, 하권은 우리 역사를 7언·5언 시로 읊었다. 하권의 「동국군왕개국연대」는 단군의 고조선 건국에서 우리 역사를 시작하고, 요동에 중국과 구별되는 '별천지'가 있다고 하여 독자적인 역사 인식을 보였다. 발해를 우리 역사로 다룬 점도 특징이다.
- 『내전록』 - 은거 중에 함께 지었으나 전하지 않는다.
- 『동안거사집』 - 그의 시문집이다.
『제왕운기』에 대해서는 원 간섭 아래에서 민족 문화의 자부심을 드러낸 책이라는 평가와, 유교 사관으로 원에 대한 사대를 합리화했다는 비판이 함께 있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