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공신회맹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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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공신회맹축(二十功臣會盟軸)은 1680년(숙종 6) 개국 공신부터 보사 공신까지 20종의 공신과 그 자손이 모여 충성을 맹세한 회맹제를 기념해, 1694년(숙종 20) 녹훈도감에서 만든 두루마리 왕실 문서로, 정식 이름은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이며 국보이다.
보사 공신의 지위는 숙종 때의 환국에 따라 세 번 뒤바뀌었다.
- 1680년 경신환국 - 서인 집권, 보사 공신 책봉.
- 1689년 기사환국 - 남인 집권, 보사 공신의 훈작을 깎음(파훈).
- 1694년 갑술환국 - 서인 재집권, 훈작을 되돌림(복훈). 김만기·김석주 등 1~3등 6명의 공신 칭호가 회복되었다.
문서 끝에는 "기사년에 파훈되고 갑술년에 복훈되었다"는 주기를 달고 국새인 '시명지보'를 찍었다. 공신의 지위가 붕당의 부침에 따라 박탈되었다가 회복되는 과정이 그대로 드러나, 숙종 때 급변하는 정국을 보여 주는 자료로 꼽힌다.
- 구성 - 회맹문, 참여자 명단인 회맹록(489명), 1694년 복훈을 종묘에 고한 축문과 제문으로 이루어졌다. 1680년 회맹에는 대상 489명 가운데 412명이 참석했다.
- 규모 - 길이가 약 24m에 이르러 왕실 문서 가운데 유례를 찾기 어렵다. 국보 지정 예고 때는 약 25m로 소개되었다.
- 가치 - 1910년까지 전래가 확인된 회맹축은 1646년·1694년·1728년의 세 건뿐이고, 임금이 보도록 만든 어람용으로 형식과 내용을 온전히 갖춘 것은 이것이 유일하다. 200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국보로 승격되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소장한다.
- ↑ 압도적인 규모와 형식을 겸비한 조선왕실 문서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 국보 지정, 월간 국가유산사랑, 국가유산청, 2026-10-19 확인.
- ↑ 20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