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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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은 조선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1392~1863)의 역사를 해·달·날의 차례에 따라 편년체로 적은 조선의 공식 역사서로, 국보이며 1997년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올랐다.
- 자료 - 춘추관이 관청 문서를 날짜순으로 정리한 시정기, 사관이 쓴 사초, 『승정원일기』·『의정부등록』 등을 바탕으로 했다. 뒤에는 조보·『비변사등록』·『일성록』도 쓰였다.
- 사관 - 예문관의 봉교·대교·검열 8명이 전임 사관으로 왕 곁에서 일을 적었다. 사초는 왕도 볼 수 없게 했다. 사관이 집에 간직한 가장 사초의 평가는 실록에 '사신은 논한다(史臣曰)'로 실렸다.
- 단계 - 실록청의 각 방이 초초를 만들고, 도청이 고쳐 중초를, 총재관이 다듬어 정초를 만들었다.
- 세초 - 다 엮은 뒤 사초와 초고는 비밀이 새지 않게 하고 종이를 다시 쓰려고 자하문 밖 차일암 냇물에 씻어 없앴다.
- 수정·개수 실록 - 붕당 정치 속에서 집권 세력이 바뀌자 『선조수정실록』·『현종개수실록』·『경종개수실록』을 다시 엮기도 했다.
- 4사고 - 세종 때 춘추관·충주·전주·성주 사고에 한 부씩 두었다.
- 임진왜란 - 1592년 춘추관·충주·성주 사고본이 불탔고, 전주 사고본만 태인의 선비 안의·손홍록이 정읍 내장산으로 옮겨 지켜 냈다.
- 산간 사고 - 1603~1606년 다시 찍어 춘추관과 강화 마니산(뒤에 정족산)·봉화 태백산·영변 묘향산(뒤에 무주 적상산)·평창 오대산 사고에 나누어 두었다. 춘추관본은 1624년 이괄의 난 때 불탔다.
- 일제 강점기 - 오대산본은 도쿄 제국 대학으로 옮겨졌다가 1923년 간토 대지진 때 대부분 불탔다. 남은 책 가운데 일부가 1932년과 2006년에 돌아왔다.[2]
- 지금 - 정족산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있고, 오대산본은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이 관리한다. 국가유산포털은 태백산본도 규장각 소장으로 적지만, 백과사전은 1980년대에 국가기록원 부산기록관으로 옮겼다고 적는다. 적상산본은 6.25 전쟁 때 북한으로 넘어갔다고 전한다.[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