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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 통상 장정(朝日通商章程, 1883)은 1883년 조선과 일본이 맺은 42관의 통상 규정으로, 개항 뒤 무관세였던 일본과의 무역에 관세를 매기게 하고, 식량이 모자랄 때 1개월 전에 알리고 곡물 수출을 막을 수 있는 방곡령 조항과 일본에 대한 최혜국 대우를 담았다.

1876년 강화도 조약 뒤 맺은 조일 무역 규칙과 부속 문서로 일본 상품은 관세 없이 들어왔고 쌀이 대량으로 빠져나갔다. 조선 정부는 1881년 부산 두모포에 세관을 두고 세금을 거두려 했으나 일본의 반대로 그만두었고, 같은 해 수신사 조병호가 통상 장정안을 가지고 갔으나 일본은 협상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1882년 조미 수호 통상 조약에서 수입 관세를 인정받자 일본도 무관세를 고집할 수 없게 되었다. 임오군란으로 중단된 교섭은 조선의 외교 고문 묄렌도르프가 참여해 다시 열렸다.[1]

조선 측 전권 대신 민영목과 일본 공사 다케조에 신이치로가 1883년 음력 6월 22일(양력 7월 25일) 서명했다. 『고종실록』에는 통상 장정과 속약, 해관 세칙이 같은 날 기사로 실려 있다.[2]

  • 관세 - 수입품은 생필품 5%, 일반 상품 8~10%, 사치품 25~30%의 협정 관세를 매기고, 수출품은 대부분 5%로 했다. 조선이 스스로 세율을 정하는 관세 자주권은 인정되지 않았다.[3]
  • 방곡령(제37관) - 가뭄·홍수·전쟁 등으로 식량이 모자랄 우려가 있으면 조선은 일시 쌀 수출을 금지할 수 있으나, 1개월 전에 지방관이 일본 영사에게 알려야 했다.[2]
  • 아편 수입 금지와 무기 판매 제한(제38관). 아편 금지 조항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제31관으로 적지만, 『고종실록』에 실린 장정 본문에서는 제36관이다(제31관은 톤세 규정).[1][2]
  • 최혜국 대우(제42관) - 조선이 다른 나라에 주는 권리와 혜택을 일본도 똑같이 받게 했다. 장정은 5년 기한으로 했다.[2]
  • 어업(제41관) - 일본 어선은 조선의 전라·경상·강원·함경 연해에서, 조선 어선은 일본 규슈·주고쿠 일부와 쓰시마 연해에서 고기를 잡을 수 있게 했다.[2]

최혜국 조항은 조미 조약에서 인정된 것을 그대로 넣은 것이며, 조선 측이 얻은 성과는 제한된 형태의 관세와 곡물 수출 금지 조항 정도였다.[3] 이 방곡령 조항을 근거로 1889년 함경도와 황해도 관찰사가 방곡령을 내렸으나, 일본 상인에게 세금을 거둔 일 등이 외교 분규로 번져 조선 정부는 거액을 배상하게 되었다.[4](→ 방곡령)

개항기 통상 조약과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조약 때 관세 기억할 조항
조일 무역 규칙 1876 무관세 양곡 무제한 유출
조미 수호 통상 조약 1882.5 인정 거중 조정, 최혜국 대우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 1882 규정 속방 명문화, 한성·양화진 개잔, 내지 통상
조일 통상 장정 1883 협정 관세 방곡령(1개월 전 통보), 최혜국 대우
  1. ↑ 1.0 1.1 조일통상장정,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2. ↑ 2.0 2.1 2.2 2.3 2.4 『고종실록』 20권, 고종 20년 6월 22일, 조일통상장정을 체결하다, 조선왕조실록,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
  3. ↑ 3.0 3.1 청의 속방화정책과 불평등조약체계의 성립, 『신편 한국사』 39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
  4. ↑ 제2기(1884∼1894), 『신편 한국사』 39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