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로 군정서
IT 위키
더 많은 작업
북로 군정서(北路軍政署)는 1919년 북간도 왕청현에서 대종교 계열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독립군 단체로, 1920년 10월 김좌진의 지휘로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찔렀다.
- 사관 연성소 - 왕청현 서대파 십리평의 삼림 지대에 병영을 짓고 사관 연성소를 세웠다. 신흥 무관 학교의 도움으로 교관 이범석 등을 맞아 독립군 간부를 길렀다.
- 무장 - 연해주에서 무기를 사들여, 1920년 무렵 1,600명이 넘는 병력과 소총·기관총을 갖춘 북간도 최강의 부대가 되었다.
- 자치 활동 - 관할 지역 주민에게서 군자금을 거두는 한편 소학교·야학을 세웠다.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에서 패한 일제는 훈춘 사건을 꾸며 대규모 병력을 간도에 보냈다. 북로 군정서는 근거지를 옮기던 중 화룡현 청산리 일대에서 일본군과 마주쳤다. 10월 21일 백운평 전투를 시작으로 완루구·어랑촌 등에서 6일간 10여 차례 싸웠으며, 홍범도의 대한 독립군 등과 함께 일본군에 큰 피해를 입혔다. 독립 전쟁 사상 가장 큰 승리로 꼽힌다.
| 부대 | 지도자 | 대표 전투 |
|---|---|---|
| 북로 군정서 | 서일, 김좌진 | 청산리 전투(1920) |
| 대한 독립군 | 홍범도 | 봉오동 전투(1920), 청산리 전투에도 참여 |
| 서로 군정서 | 이상룡, 지청천 | 서간도, 신흥 무관 학교와 연계 |
| 조선 혁명군 | 양세봉 | 영릉가·흥경성 전투(1932~1933) |
| 한국 독립군 | 지청천 | 쌍성보·대전자령 전투(1932~19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