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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로 군정서(北路軍政署)는 1919년 북간도 왕청현에서 대종교 계열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독립군 단체로, 1920년 10월 김좌진의 지휘로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찔렀다.

대종교 신자들이 만든 중광단이 3.1 운동 뒤 대한 정의단으로 커졌고, 1919년 대한 군정회와 합쳐 대한 군정부가 되었다. 같은 해 12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요청에 따라 이름을 대한 군정서로 바꾸고 임시정부 산하로 들어갔다. 서간도의 서로 군정서와 구별해 흔히 북로 군정서라 부른다. 총재는 서일, 총사령관은 김좌진이었다.[1]

  • 사관 연성소 - 왕청현 서대파 십리평의 삼림 지대에 병영을 짓고 사관 연성소를 세웠다. 신흥 무관 학교의 도움으로 교관 이범석 등을 맞아 독립군 간부를 길렀다.
  • 무장 - 연해주에서 무기를 사들여, 1920년 무렵 1,600명이 넘는 병력과 소총·기관총을 갖춘 북간도 최강의 부대가 되었다.
  • 자치 활동 - 관할 지역 주민에게서 군자금을 거두는 한편 소학교·야학을 세웠다.

청산리 전투(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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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6월 봉오동 전투에서 패한 일제는 훈춘 사건을 꾸며 대규모 병력을 간도에 보냈다. 북로 군정서는 근거지를 옮기던 중 화룡현 청산리 일대에서 일본군과 마주쳤다. 10월 21일 백운평 전투를 시작으로 완루구·어랑촌 등에서 6일간 10여 차례 싸웠으며, 홍범도의 대한 독립군 등과 함께 일본군에 큰 피해를 입혔다. 독립 전쟁 사상 가장 큰 승리로 꼽힌다.

  • 간도 참변(1920) - 패배에 앙갚음하려는 일본군이 간도의 한인 마을을 불태우고 주민을 학살했다.
  • 자유시 참변(1921) - 독립군은 밀산에 모여 대한 독립 군단을 만들고 러시아 자유시로 옮겼으나, 지휘권 다툼 속에 러시아 적군에게 무장 해제를 당하며 큰 희생을 치렀다. 김좌진 등은 만주로 돌아와 1925년 신민부를 세웠다.

만주의 독립군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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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 지도자 대표 전투
북로 군정서 서일, 김좌진 청산리 전투(1920)
대한 독립군 홍범도 봉오동 전투(1920), 청산리 전투에도 참여
서로 군정서 이상룡, 지청천 서간도, 신흥 무관 학교와 연계
조선 혁명군 양세봉 영릉가·흥경성 전투(1932~1933)
한국 독립군 지청천 쌍성보·대전자령 전투(1932~1933)
  1. ↑ 북로군정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