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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헌(崔忠獻, 1149~1219)은 1196년 이의민을 죽이고 권력을 잡아 4대 60여 년에 걸친 최씨 무신 정권을 연 고려 무신 집권기의 최고 권력자이다.

상장군 최원호의 아들로, 무신 정변에 직접 가담하지 않은 무신이었다. 1196년(명종 26) 4월 동생 최충수, 생질 박진재 등과 함께 미타산 별장에서 이의민을 죽이고, 그 일당을 학살하거나 귀양 보내 정권을 잡았다. 이의민이 의종을 시해하고 왕위를 엿보았다는 것을 명분으로 삼았다. 이후 명종·신종·희종·강종을 차례로 갈아 치우거나 세우면서 23년 동안 권력을 쥐었다.[1][2]

  • 봉사 10조(1196) - 동생과 함께 명종에게 올린 개혁안이다. 토지 겸병 시정, 조세의 공평, 승려의 고리대 금지, 관리의 사치 금지 등을 담았으나 실제로는 집권의 명분이었다.
  • 왕의 폐립 - 1197년 명종을 폐하고 신종을 세웠다. 같은 해 딸을 태자비로 들이려던 동생 최충수와 싸워 그를 죽였다. 1204년 희종을 세웠고, 1211년 자신을 노린 희종을 강화로 내쫓고 강종을 세웠다.
  • 도방(1200) - 경대승이 두었던 사병 집단 도방을 되살려 크게 키웠다.
  • 진강후와 흥녕부 - 1206년 진강후에 봉해지고 흥녕부(뒤의 진강부)를 열어 왕에 버금가는 지위를 누렸다.
  • 교정도감(1209) - 청교역 서리들의 암살 모의를 계기로 설치했다. 그 뒤 인사·감찰·징세를 맡는 최고 권력 기구가 되었고, 스스로 그 우두머리인 교정별감이 되었다.

1198년 자기 집 노비 만적이 신분 해방을 꾀한 만적의 난을 진압했고, 경주 일대의 신라 부흥 운동 등 지방의 봉기를 강하게 눌렀다(→ 무신 집권기의 민란). 한편 이규보 등 문인을 등용했다.

  1. ↑ 최충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고려사』 권129 열전42 반역3 최충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