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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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화사(玄化寺)는 고려 현종이 부모인 안종과 헌정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개경 근처 영취산에 세운 절로, 절의 창건을 기록한 현화사비에 송과 거란의 연호가 함께 새겨져 고려 전기의 다원적 대외 관계를 보여 준다.
1021년 절이 완공되자 창건 내력을 적은 비를 세웠다. 비 머리에는 현종이 직접 전서로 '영취산대자은현화사지비명'이라 썼다.
1차 침입(993) 뒤 고려는 거란의 연호를 썼으나, 2차 침입 이후 관계가 다시 나빠지자 1016년(현종 7)부터 송의 연호를 썼다. 1019년 귀주 대첩으로 거란의 3차 침입을 물리친 고려는 거란과 강화를 추진했고, 1022년(현종 13) 4월 거란의 책봉을 받으면서 송의 연호를 버리고 다시 거란의 연호 태평을 쓰게 되었다(『고려사』 현종 13년 4월).[4] 1021년 7월에 세운 앞면과 1022년에 새긴 뒷면의 연호가 다른 것은 이 짧은 사이의 외교 변화를 그대로 보여 준다. 고려는 전쟁에서 이기고도 거란과의 조공·책봉 관계를 받아들이는 한편 송과의 문화 교류도 이어 가며, 어느 한 나라에 치우치지 않는 실리 외교를 폈다(→ 고려 거란 전쟁).
- 현화사 칠층석탑 - 1020년 무렵 현종이 부처의 사리와 안종 능 근처 절에서 나온 어금니를 모시려고 세운 탑이다.
- 현종 이후 덕종·문종이 현종의 제사를 이 절에서 열었고, 의종은 자주 행차했다. 15세기 후반에는 크게 쇠락했고, 17세기 초 이후 언제 폐사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1]